홍콩에서 심리학과 다니기 09

글을 즐겁게 쓰기

by 바다

기숙사 옆에는 거대한 산이 있다. 거의 산에 있는 나무의 잎 하나하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다.

그 산은 공동묘지라고 한다. 왠지 무언가 커다란 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몰랐고, 지금 알고 있음에도 별 생각이 없는 나에게는 산은 그저 산이다. 그것도 1월인데 귀여운 꽃들이 옹기종기 산꼭대기에 펴있는, 사랑스러운 산.


한국에 갔다 와서 내가 마카오에서 산 컵을 가져왔다. 아닌가? 거기가 어디였더라. 리장인가? 아무튼 그게 중요하지 않다. 그 컵이 예뻤고 사실은 그 지역에서 난 게 아니라 일본 수입품이라는 게 웃긴 포인트다.


나는 빈지노의 "I don't mind"를 공항버스에서 들으며, 나는 홍콩으로 수출되는 것이라고 자기 암시를 했다. 누군가는 진짜 집을 찾지 못해서 한국도 중국도 그 어디도 집으로 느껴진지 않는다고 했다.


내게 집은 어디일까. 집이 의미하는 건 뭘까.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고작 중3~고3을 중국에서 살아 놓고 이제야 정체성 혼란을 느끼는 내가 살짝 어이가 없다. 인생의 전체를 해외에서 외국인으로, 이방인으로, 나그네로 살아 온 사람도 있지 않은가. 혼혈인 사람은 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고.


아무튼간에 내가 느낀 건 밍숭맹숭 이상한 감정이었다. 분명 엄마를 떠나니까 슬프긴 한데 홍콩으로 가니까 좋긴 하고, 하지만 여전히 홍콩은 내게 집이 아니고. 엄마 앞에서는 얘가 어떻게 갈까, 하는 어린 아이인데 막상 홍콩 공항에 도착해서 으쌰으쌰 atm기 찾아 택시까지 탔으니. 이 간극이 나도 어렵다.


아무튼!


나는 홍콩에 돌아왔고 잘 살고 있다. 한국에서는 용병왕 현대 판타지 웹소설을 총 12개의 출판사에 투고해놓고 노심초사했었다. 솔직히 아무나 "같이 합시다!" 하고 연락이 올 줄 알았다. 내용이 재밌으니까. 하지만 출판사는 날카로웠다. 내가 어리버리하게 투탑 주인공으로 주인공을 두 명으로 설정해 놓은 걸 제대로 집었다. 그들의 (바쁜데도 불구하고 정말 마음을 써서 써주신) 피드백을 보며 여러 번 주인공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우리 지수가!! 지수가!! 뭐가 문제!! ...문제가 많지...그럼그럼...이걸 여러 번 반복하면 내 투고 후기다.


현재 용병왕은 출판사 피드백 기반으로 수정방향을 잡았다. 내 자체 세계관을 헌터물로 바꾸기. 주인공이 활약하는 장면만 모으기 등등이다. 어제까지 2화를 편집했다. 여기서 편집은 필요 없는 부분을 삭제하는 걸 말한다.


그리고 동시에 육아물 로맨스판타지를 쓰고 있다. 두 작품을 한 번에 쓰는 건 아니다. 왜냐면 원래 용병왕을 이번 달에는 손도 안 대려고 했으니까. 근데 막상 시간이 많으니까 용병왕까지 하게 되었다.


확실히 로판은 잘 써진다. 읽은 게 있으니까. 근데 현판처럼 죽이고 피 튀고 액션씬 나오는 그런 걸 못한다. 할 수는 있겠지. 근데 내 여주인공은 4살인 걸.


하지만 내게 현재 로판 원고는 치유의 시간이다. 귀엽고 가벼운 이야기를 쓰니까 재밌다. 하지만 이걸 또 투고를 하려고 10화를 언제까지 쓰자고 정해놓으니 쓰기가 싫다. 그래서 지금 브런치 수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즐겁다.


2023년의 글쓰기 목표는 5500자 매일 쓰기가 아니다. 출판사와 계약하기도 아니다. 공모전 당선도 아니다. 아, 생각하니까 설렌다. 청소년 소설 공모전을 3월부터 하려고 한다. 재밌을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올해 글쓰기 목표는 "즐겁게 쓰기"다.


강제로 하는 건 공부 하나면 되었다. 그건 내가 선택한 전공이고 공부를 하기 싫은 건 누구나 같으니 강제로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누가 나보고 칼 들고 소설 쓰라고 강요했나? 아무도 안 했다. 시간을 쓰고 마음을 쏟아 쓰는 건 나다. 소설은 내가 써서 즐거워야 한다.


첫 소설을 쓸 때 느꼈던,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즐거움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자, 이제부터 뭘 써볼까하고 생각을 굴릴 때 정말로 행복합니다. 소설이 안 써져서 고생한 경험은 없습니다.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소설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 중 한 부분)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보라. 무라카미 하루키도 동의했다. 내 막무가내 주장에 웃음이 나온다.


현재 나는 즐겁게 글을 쓰려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다. 브런치를 쓰고 싶으면 쓰고, 시를 쓰고 싶으면 쓰고, 로판 원고를 하고 싶으면 하고.


로판 원고에 책임이 막중해졌는데 신경 안 쓰고 그냥 보고 싶은 장면 쓰기를 해야겠다. 해보지, 뭐. 어차피 언젠가는 시도해야하는 글쓰기 방법이다. 하하!


투고를 하고 멘탈도 튼튼해지고, 용병왕을 살리면서 점점 글쓰기가 어딘가를 향한 달리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건 긴 마라톤이 아니라 (골이 있는 게 아니라는 말), 나의 오늘의 하루에 맛있는 차 같은 느낌.

당장 나에게 즐겁고 재밌는 것이다. 이 모든 글이 다 쓰레기가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큰 고민을 할 때가 있다. 그때는 나는 내게 말해준다.


넌 당장 내일 열이 나서 코로나 확정 받고 저기 병원으로 실려갈 수도 있다고. (심지어 병원도 가깝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미래다. 저렇게 되면 학교도 못 가고 끙끙 앓으면서 침대에 누워만 있겠지.

오늘 그렇게 아프지 않은 게 얼마나 감사한가. 오늘의 최선을 다하면 된다. 내일은 하나님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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