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웹소설 투고 준비하기
교수님께 보낸 세 번째 이메일이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졌다. 학교 이메일로 한참을 보내도 답이 안 오길래, 개인 지메일로 보낸 결과였다. 메일함을 확인했더니 처음 보는 실험실에서 답장이 왔다. 자기소개서 CV를 보내달라는 메일이었다. 답장이 드디어 와서 기쁘긴 했으나 이제 1학년인데 자기소개서에 뭘 써야 한담. 와장창. 멘탈이 부서졌다. 토요일에 확인했으니 월요일에 답장을 보내야지 하고서 현재 화요일까지 왔다.
심리학 치료 관련 인턴을 하고 싶다고 이메일을 썼었는데 우울증 관련 연구도 하는 실험실이었다. 홍콩에서 인턴을 하려면 광둥어, 중국어, 영어를 다 해야 한다고 심리학과 졸업 학년 선배가 알려주었었다. 그래서 괜히 중국에서 4년 살았던 것을 슬쩍 넣어서 기본 중국어 가능이라고 써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실은 자기소개서를 쓸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써야 하는데 말이다. 모든 것이 다 마음의 여유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심리학 1학년 필수 강의에서 배운 바로는 생각을 바꾸면 환경과 행동도 바뀐다고 한다. 행동이 가장 바꾸기 어려우니, 생각을 바꾸는 게 더 좋지 않겠냐며 홍콩 사람인 교수님이 새침하게 말을 맺었었다. 거기에 따라서 나도 고래를 주억거렸으니, 나도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오늘까지 해야 하는 과제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타이푼 8 경고 (태풍) 때문에 학교를 못 갔을 때 쌓인 온라인 강의까지 봐야 해서 부담감에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타이푼 8이라. 얼마나 깜짝 놀랐던가. 한국에서 초등학교 때 말고 태풍 때문에 학교를 못 간 건 오랜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학교는 무조건 간다'가 내 뇌의 시스템인지라 집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된 강의를 듣는 건 아주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쌓인 강의를 보고 에세이도 써야 하고 문제도 풀어야 한다. 느릿느릿하게 하지만 바쁘게 일해야겠다. 화이팅이다, 바다야.
이제 학교 이야기를 마쳤으니 글 이야기해볼까. 준비하던 현대 판타지 웹소설이 어느새 원고 10화까지 왔다. 웹소설을 쓰면 좋은 점은 아주 많다. 물론 전부 개인적인 이유다. 소설을 완결하는 경험, 남성 독자들로 내 능력치를 확장하는 것, 남성향/현대 판타지라는 나에게는 새로운 장르로 능력치를 높일 수 있고, 플롯을 먼저 세우고 글을 쓰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매일 꾸준히 5,500자를 쓰는 훈련이 된다. 이는 앞으로 내 목표인 "취미로 글 쓰면서 꾸준히 공모전 출품/투고하기"를 위한 기초체력을 만들어 줄 것이다.
하지만 이걸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글을 쓸 시간을 정확히 정하는 것. 괜히 압박감이 들면 아무것도 안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내 정신 덕분에 나는 이 작업에 요새 몰두해있었다. 그래서 정한 것이
6-8 공부
9-10 글 1/2
중간에 30분-1시간 공부
7-8 글 2/2
8-10 공부
이 루틴이었다.
완벽주의적인 내 성향을 누르고 말하는 거지만, 어쨌든 반 이상 성공했으니 오늘도 괜찮게 루틴을 지켰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생긴 것이다. 웹소설 투고를 내게 알려준 장본인, 가명으로 A군이 오랜만에 내게 마감 독촉을 하던 때였다. 글쓰기 카카오톡 오픈 챗방에서 만난 A군은 현재 웹소설 작가로 일하고 있다. 내가 현대 판타지를 하려고 한다니까 두손 두발 걷고 나서서 날 많이 도와준 사람이다.
작가님. 마감은 아직이신가요?
이 대사를 끊임없이 말하는 귀여운 이모티콘이 우수수 쏟아졌다. 마침 나는 오늘 아침 "9-10 글 1/2"을 했기 때문에 당당하게 거의 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A군이 더 독촉하는 바람에 마음이 화르르 불타올랐다.
그래. 낮잠을 포기하고 글을 마무리하자! 어차피 나는 글 쓰는 거 좋아하니까!
안 그래도 오늘 온종일 주인공이 되어서 현실과 상상을 오버랩하여 살아왔다. 이걸 어떻게 없애는가 싶지만, 강의 중간에 지루해서 조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두고 보았다.
그러나, 결국 낮잠도 못 자고, 글도 못 쓰고 다시 핸드폰을 들고 소설 투고 후기만 찾아보고 있는 나 자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지만 토닥토닥 위안하며 다시 핸드폰을 껐다. 이상한 일이란 바로 이것이었다. 루틴을 벗어나서 과하게 글을 쓰려고 하니까 마음만 힘들고 결과는 나온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아야지. 누가 뭐래도 내 속도를 지켜야지. 천천히 꾸준히 가는 게 빠르게 가다가 사고가 나서 멈추는 것보다 훨씬 낫다.
오늘은 강의가 다 재밌었다. 부담을 없애면 대학 생활도 나름 재밌다. 교수님들의 강의도 재미있다. 그러나, 잘하려고 하다 보면 그게 다 무거운 책임감이 된다. 이건 현재 쓰고 있는 원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늘은 부담감을 가지지 않고 느리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법을 실행해보아야지.
저녁으로 연어를 사서 요리를 해 먹으려고 했는데 이러다가는 또 우울하게 기숙사에서만 박혀서 저녁도 대충 먹을 것 같다. 꼭 저녁때 나가서 연어를 사 와야겠다. 그러면 이렇게 홍콩 대학 일기+글일기를 마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