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히지 않는 하루
평생 잊히지 않는 날은 살면서도 그 감정이 닳지 않는 날일 것이다. 누군가는 상을 받는 날 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날 일 수도 있다.
나에게 손주가 태어나는 날은 한 생명이 세상에 온 날이다. 또한 내가 살아온 시간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날이 되지 않을까.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 엄마 아기가 태어났어요"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리는 단순한 소식이 아니었다.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있던 사랑을 깨우는 소리였다. 기쁨인지, 안도인지, 감사인지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고맙다'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 됐다는 안도의 마음이 컸다.
그 벅찬 가슴은 잊히지 않는 날의 시작이었다.
손주를 만나러 가던 날의 설렘은 또 무엇이었을까. 시골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 안의 기운은 온통 만나는 기쁨, 안아보는 보드라운 느낌으로 찼다.
기차 안에서 바깥 풍경을 보면서도 아이 울음은 어떨까. 얼굴은 어떨까 하는 기대와 웃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데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는 그날 태어났지만 할머니의 사랑은 이미 길 위에서 먼저 태어나 서울을 향하고 있었다.
손주 얼굴을 처음 보던 순간 설렘보다 안도의 마음이 컸다. 아이가 건강하게 잘 태어나주었구나. 세상에 우리와 인연을 맺은 첫사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의 얼굴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아이를 안았을 때의 따뜻한 체온은 기억이 난다. 이렇게 세상의 빛으로 우리에게 온 소중한 아이였다.
첫돌이 되던 날, 태어난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돌 상을 앞에 두고 웃고 손을 뻗고 하던 아이.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그때의 감동이 앞선다.
첫돌은 아이에게는 첫 생일이지만 어른들에게는 큰 다짐을 하는 날이기도 했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돌잡이라는 것도 한다. 아이가 손을 뻗어 돈이라도 잡을라치면 세상 사람들은 처음하는 손놀림에 소리지르며 작은 감동을 받기도 한다. 우리는 그저 '아프지 말고 잘 자라주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가장 단순한 바람을 마음에 새겼다.
그 아이가 이제 3월이면 고등학생이 된다.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지. 가끔 할머니한테 전화가 온다. "할머니 뭐 하세요. 뭐 드셨어요." 이 한마디만 들어도 가슴이 뿌듯하다. 뭔지 모를 끈이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이는 자라서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내 마음에는 여전히 처음 안아보던 그 작은 온기로 남아있다. 이제는 기쁨과 대견함, 그리고 '잘 자라줘서 고맙다'라는 깊은 감사가 담겨있다.
이제 자기만의 길 앞에 서 있는 이 아이가 조급함에 흔들리지 않고 비교하지 말고 자기 속도를 믿고 스스로 잘 헤쳐 나가길 바라는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