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생각8

장롱속에 모셔놓은 보라색 드레스

by 이정숙

드레스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

가끔 장롱 속을 들여다보면서 혼자 웃는 날이 있다.

장롱 깊숙이 고이 모셔두었던 보랏빛 꿈, 몇 년 전 이 옷을 고를 땐 나도 이 꽃들처럼 활짝 피어날 무대를 꿈꾸었다. 그때는 금방 입을 것처럼 옷을 고르고 입어보고 구입했다. 꼭 어울리는 멋진 자리에 입으려고 준비해둔 드레스였다. 그런데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러가버렸다. 오늘 아침에도 거울 속의 나를 보면서 드레스를 또 쳐다본다. 거울 속에 낯선 얼굴과 드레스, 이제 와서 무슨 드레스냐고 작은 소리를 내어본다, 하지만 늘 아쉬움이 남아있다. 그동안 무대는 많이 있었지만 차마 입을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이 드니까 한복이 편하고 보편적이다. 한복은 누구도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눈에는 익숙하기 때문이다. 시 낭송과 다도를 하는 나는 드레스와 한복이 몇 벌 준비되어 있다.


왜 구입했나.

몇 년 전 아는 분이 마산에 있는 한복 집에서 세일을 한다며 가자고 했다. 좋은 옷을 싸게 살 수 있으니 한 벌 값으로 여러 벌을 살 수 있겠다 싶었다. 한복과 드레스가 다양한 스타일로 많이 있었다. 가게를 그만둔다고 옷을 사게 팔고 있었다. 나는 이것저것 뒤지면서 나한테 맞는 몇 가지 한복과 보라색 드레스를 골랐다. 그때 골랐던 한복은 아직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다. 드레스도 마찬가지다. 한복은 내 몸에 맞는 것으로 맞추어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옷은 실제로 예쁘기는 했지만 입혀지지 않았다. 그 후에도 2년 전 한복하는 전문가의 옷을 무대용으로 한 벌 구입했다. 이 옷도 예쁘기는 했는데 무대에서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다. 옷이 화려해 평소에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대에서도 너무 화려한 옷보다는 아주 평범한 한복만 입게 되었다. 다행히 2년 전의 한복은 옷 주인과 연결해서 결국 옷을 바꾸기로 했다. 1년이 지났는데도 옷을 다른 옷으로 만들어주었다. 참 고마운 분이었다. 옷을 생각 없이 겉만 보고 구입한 내 잘못이다. 옷 고를 때 좀 더 신중해야 했는데 입지 않으니 옷 구입에 실패한 꼴이 되었다.


오늘 아침 다시 장롱문을 열어본다.

한때는 나의 용기였고 기쁨이었던 보라색 드레스. '나중에, 정말 특별한 날에'라고 미뤄둔 것이 결국 이렇게 긴 아쉬움이 될 줄 몰랐다.혼자 내 방에서 무대인양 치마를 들고 거울 속 나를 바라본다. 나이가 들고 입을 기회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옷장에 걸린 화려한 꽃 장식이 가끔은 나를 나무라는 것만 같다.


하지만 오늘 깨닫는다. 무대는 꼭 남들이 만들어주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비록 현실의 조명은 아닐지라도, 내 마음속 무대에서 나는 여전히 이 드레스가 가장 잘 어울리는 주인공이라고 위로해 본다. 언젠가는 이 드레스를 꼭 입을 날이 있을 것이라고 다시 생각하면서 장롱문을 닫는다.


아쉬움은 이제 이 사진 한 장에 묻어두고, 다시 한번 당당하게 웃어보자. 옷이나 가구, 일상의 물건을 잘 고르는 것도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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