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든 한 장면

2일 차- 밀양의 샛별, 축하합니다

by 이정숙

브런치 작가챌린지 - 2일 차


2000년 2월 설 전날 아침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경상남도 교육청 인사과에서 전화가 왔다. 인사담당 과장이었다.


" 밀양의 샛별, 이정숙 선생님 축하합니다. 전문직 합격입니다."


순간 가슴이 뛰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에 "정말입니까" 되물어보기도 했다. 설 전날이라 새날의 기쁜 소식에 새처럼 날아갈 듯한 마음이었다.


3년 동안 시험 준비를 하면서 세 번 시험을 쳤다. 올해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후회 없이 공부를 했다. 운이 따라주었다. 합격의 순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전화를 해준 그분 성함도 잊지 않고 있다.


그때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교육부 교육과정 실험연구학교였다. 연구학교를 추진하는 학교에는 핵심 멤버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때는 창원에서 승진을 목표로 그 학교에 몰려오는 선생님도 있었다. 실험연구학교는 가산 점수가 부여되는 학교였다. 나 또한 그 점수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연구하는 선생님들 옆에 있으니까 나도 연구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몇몇 선생님이 전문직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 자료를 함께 공유했다. 그중 한 명이 먼저 합격을 했다. 처음에는 어떤 자료가 있나 하고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점점 전문직 준비에 몰입하게 되었다. 첫해에는 시험경향을 알아보는 정도로 시험을 쳤다. 그런데 당연히 낙방했다. 두 번째 해에는 마음 다잡고 창원까지 가서 전문직스트디그룹에 들었다. 주말마다 창원에 갔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자료도 공유했다.


장학사 시험 과목은 대체로 이러하다. 교육학은 논술, 교육정책과 교육행정은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법령과 제도는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 외에도 인사, 예산 부분, 정책기획과 제도 개선을 기획하는 사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여러 가지 공부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도 자료 찾기에 바빴다. 학교에서 차 마시는 시간도 없었다. 공부는 혼자 하는 일이라 늘 책을 찾거나 교육잡지, 공문 하나라고 빠짐없이 찾아보았다. 교육정책의 흐름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모든 공문은 다 훑어봐야 했다. 뉴스와 신문도 끊임없이 보고 들어야 했다. 시사성은 정책 흐름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시험 준비하는 기간 동안은 모임에도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을 뺏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 집안 살림하고 나면 저녁 9시가 되었다. 아이들도 학생이라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도 나는 앉은뱅이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했다. 저녁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뉴스만 보고 TV는 꺼야 했다. 잠이 오면 거실 소파에 잠시 눈을 붙였다. 방 침대에서 잠을 자면 아침까지 자버리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밀양대학교 도서관에서 저녁시간 공부를 하였다. 지금 밀양 대학은 부산대학교에 편입되어 삼랑진으로 이전되었다.

정성과 노력이 오늘의 결과를 맞이한 것이다. 전문직 합격 후 연수를 받고 7년 동안 장학사 생활을 했다.


장학사는 단위학교만의 문제가 아닌 전체 학교의 교육적 조건을 알아보고 개선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물론 단위학교에도 신경 써야 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 제도와 방향을 바꾸는 펜 한 줄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주력했던 일 중에 하나는 교육청 교육과정 입안이다. 학교는 교육청 교육과정이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워크숍을 열고 조언을 들었다.

교육과정 워크숍 후에 ' 학교의 자율성'이라는 말이 덧붙었고 서술 방식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장학사는 멋있는 문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 문서를 따라 움직일 학교의 입장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의 책상 앞에서 딱딱하게 쓰이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건져 올린 현실의 언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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