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의 꿈

4일 차- 브런치 작가의 꿈

by 이정숙

어릴 적에는 노래 잘하는 아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5~6세쯤 되었을 때 명절날 할아버지 댁에 가면 식구들이 많았다. 큰댁, 작은댁 할아버지 모두 모여있는 자리에서 어른들이 박수를 치면 신이 나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어른들이 돈을 주었다. 기분이 좋은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춤도 같이 추었다. 그 후로도 다른 자리에서도 노래를 부르라면 서슴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음악 시간이 되면 담임선생님이 앞에 나와서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오르간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잘한다며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나는 음악 시간이 기다려졌다. 이런 경험을 가지고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합창반에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노래를 즐겁게 불렀는데 50년 후 여고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 말 “ 너 노래 잘 부르던 정숙이 맞지” 라며 기억해 주었다.


어릴 적 꿈이라면 무엇이 되고 싶다기보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였다. 음악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계속할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던 때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고집할 수만 없었기 때문이다. 오 남매 맏이인 나는 늘 동생들을 돌보는 형편이었다. 엄마가 몸이 많이 아팠던 시절이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공부도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음악 공부는 포기하였다. 가정적, 시대적 환경에 의해 나는 초등 교사가 되었다. 나의 본질은 어디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음악을 담당하게 되었다. 합창부, 리듬 합주부 등을 맡아서 아이들을 지도하게 되었다. 전문성이 부족한 나는 관내에 있는 음악선생님들한테 자문을 구했다. 토,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와 연습을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학생, 학부모들은 교사 말을 잘 이해해 주었던 것이다. 요즘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경상남도 어린이 동요 합창 대회에서 우승을 받은 적이 있다. 관내에서 1등을 했기 때문에 도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런 관록으로 음악 전담교사로 몇 년을 이어갔다.


꿈은 늘 변하는 것이다. 하나를 이루면 또 다른 꿈이 생긴다. 작은 것을 이루면 더 큰 것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초등 교사이던 시절 중등 음악 실기교사가 되기 위해 시험을 쳤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밀양에서 부산까지 전문가 선생님들한테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피아노、화성학、작곡 등 공부를 하면서 갈 때마다 선생님이 시창 공부를 시켰다.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시험은 떨어졌다. 그 후로는 음악은 나의 취미생활이 되었다. 교사로 재직하면서 나의 꿈은 교직생활을 좀 더 확장해 보자는 꿈이 생겼다. 그래서 전문직을 택하였고 교장 승진도 하게 되었다. 교사로서의 직무에 더 확대된 시야를 가지면서 학교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정년퇴직을 하였다.


지금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글을 쓰는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지난봄부터 지금까지 전자책을 여섯 권 출간했고 현재 일곱 권째 퇴고 중이다. 글쓰기는 끝이 없다. 매일 써야 하고 주어진 글쓰기 챌린지도 해야 한다. 매주 정규 수업을 듣고 목요일에는 문장 수업을 듣는다. 나는 글쓰기에 자질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한번 써보라'라고 하여 쓰기 시작했을 뿐인데 쓰다 보니 전자책까지 내게 된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내게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브런치에 네 번째 글을 올리고 있다.

어떤 일이든 꿈이 있어야 이룰 수 있다.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매일 챌린지 글을 이어가고 있다. 언젠가 정말로 브런치 작가가 되는 날이 오면 말할 것이다.

"나의 꿈이 이루어졌다 "라고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꿈을 향해 가는 것이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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