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어법을 계속 쓰면 반어법을 쓰지 않은 것이 된다

연재 실패2 / 미영

by 금붕어

요즘 수박이 많이 싸졌다고 생각하자마자 집 냉장고에 수박이 들어찼다.

먹을 만큼만 썰어서 방으로 가져가는데 아버지가 같이 먹자며 거실에 나를 앉혔다.

아버지와는 일주일에 한두 마디 나누면 많이 나눴다고 할 정도로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아버지가 '같이 먹자'고 한 것에 우선 경계부터 했다.

무엇보다 서울 생활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내 처지 때문이기도 했다.

지난 4년간 착취당하며 일한 끝에 내가 배운 것이라고는 계약직 같은 정규직으로 일할 바에야 차라리 계약직 같은 계약직으로 일하자는 것이었으니까.


아버지가 물었다.

"너 그래서 앞으로 뭘 할 거냐?"

대부분의 부모 자식 간의 싸움이 그렇듯 나는 무심결에 날을 세웠다.

"알아서 할게요."

그런데 아버지 왈.

"그래라. 내가 살아 보니까 열심히 계획해도 잘 안 되고, 막 살았는데 잘 되기도 하더라."

예상치 못한 답변에 어쩐지 감동해 버린 나는 괜히 쑥스러워져 "오늘 무슨 일 있으세요?"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말이 아버지의 특기인 '반어법'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뒤였다.

옛날부터 아버지는 말수가 적었는데 가끔 대화할 때면 늘 "아이고, 훌륭하세요." "예, 마음대로 하세요." 등의 반어법을 썼다.

내가 그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리고 아버지가 반어법에 너무 고단수가 돼 버린 나머지 이제는 반어법이 반어법으로 들리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물론 나는 그 말이 반어법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도 그 말이 마음에 들어 막 살기로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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