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엿한 어른 되기 실패

연재실패 16 / 미영

by 금붕어

어른이 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래 예시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어른이 되었다고 할 수 있고, 모두 해당된다면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 자기 명의로 된 집이 있다. 2. 자기 명의로 된 차가 있다. 3. 밖에서 개 같은 일을 100가지 겪고 온 날에도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참고 잠든 적이 있다. 4. 밖에서 개 같은 일을 100가지 겪고 온 날에도 건강 악화로 맥주 한 캔을 마시지 못하고 잠든 적이 있다. 5. 치과에 갔는데 의사가 스케일링을 해야겠다고 하자 마취 좀 해 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은 적이 있다.


1~4번까지는 대부분 납득할 것이므로 5번에 대해 얘기해 보자면, 나는 얼마 전 왼쪽 어금니에 심상치 않은 통증을 느끼고 연휴 내내 암울했다. 썩은 이를 몇 년씩 방치했다가 몇백만 원을 들여 싹 갈아엎은 적이 있는데, 그때 차라리 차에 치여 어디 하나 부러지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체 없이 치과에 갔다. 그런데 의사 왈, 오늘은 스케일링만 받고 다음번에 잇몸치료를 한 번 하면 되겠다고 하는 것이다.(충치가 없었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충치가 없다는 사실보다, 잇몸치료에 대한 부담감보다, 지금 당장 스케일링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사색이 됐다는 점이다.


충치치료를 위해 주사 마취를 맞았을 때 말고는 스케일링조차 받지 않는, 엄청난 겁쟁이인 나는 결국 "자, 입 벌려 보세요."라는 간호사의 말에 손을 들고 주사 마취를 해 달라 부탁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단호하게 가글 마취만 해 줬고, 스케일링이 끝나고 치과를 나설 때쯤에는 온몸의 땀이 식어 좀 추웠다.


그래서 내가 어른이 되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나는 3, 4번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덧붙여 혹여나 위의 예시 중에 하나도 해당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너무 좌절하진 말자. 이것 말고도 인생에는 좌절할 일이 아주 많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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