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리언: 커버넌트 (2017)
뻔하지만 흥미로운 질문들이 있습니다
'음악 좋아하세요?' / '영화 좋아하세요?'
이러한 질문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대답이 거의 항상 비슷하기 때문이죠
아직 짧은 인생 경험과 넓지만은 않은 인간관계를 갖긴 했지만
'저는 음악/영화를 싫어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질문들은 반드시 그 뒤 질문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어떤 장르/음악/가수/감독 좋아하세요?'
생각해 보면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때와 장소, 기분, 상황에 따라 매우 크게 변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저는 이 질문들을 대해 이렇게 해석합니다
'남들과 달리 독특하게 좋아하는 작품이 있나요?'
저에게 있어 그런 영화가 바로 이 '에이리언: 커버넌트'입니다
놀랍게도 영화 배급사는 제목으로 '에이리언'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더군요
Alien 하면 에일리언이 맞을거 같은데, 언제 봐도 생소합니다
아무튼 이 영화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2012)와 동일한 에이리언 세계관의 영화입니다
과거 에이리언 시리즈가 워낙 호러 SF계의 명작이기에 에이리언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독특한 점은 이 세계관에서는 '엔지니어'라 불리는 존재가 지적 생명체를 창조했다고 여기고 있다는 점이지요
프로메테우스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엔지니어는 검은 물을 마시고 유전자 단위로 분해되며,
그 유전자가 하나하나 찢어졌다가 재조합되면서 생명을 창조하는 듯한 묘사를 보여줍니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뭔가 심각한 오류로 보이지만
생명체를 창조한 '엔지니어'의 역할을 강조한 비유적 표현이라 생각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오프닝 시퀀스'입니다
사실 이 용어를 제가 정확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만
'시작하고 대충 몇 분'이라는 표현보다는 고급져 보이니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오프닝 시퀀스에 해당하는 장면은 바로 '데이빗의 탄생'입니다
웨이랜드 회장은 이제 막 눈을 뜬 존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아래에서는 그냥 로봇이라 부르겠습니다
Weyland: How do you feel?
Robot: Alive
그냥 눈 떴길래 기분 어떻냐고 물은거 같은데 똑똑한 친구인건지 ALIVE라 답하는군요
결국 '네가 묻고 싶은거는 내 기분이 아지니 않은가?'
혹은 '당신이 정녕 기계에게 감정을 묻는 것인가?'의 의미를 담은 대답이었겠죠
Wayland: What do you see?
R: White, Room, Chair...
R: Carlo Bugatti Throne Chair
R: Piano...Steinway Concert Grand.
R: Art...the Nativity..by PIERO DELLA FRANCESCA
이후 이 웨이랜드는 무엇이 보이는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는 보이는 것을 순서대로 말해주죠
흰색, 방
의자... 카를로 부가티의 "Throne Chair"
피아노... 스테인웨이 그랜드 피아노
예술품...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Nativity"
역시 AI가 탑재되어 똑똑합니다
저는스테인웨이라고 써있는 피아노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말이죠
이렇게 지적 능력을 힘껏 자랑하는 로봇에게 웨이랜드 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Weyland: I am your father....Ambulate.
Weyland: Perfect.
"I am your father"라는 대사는 스타워즈의 아이콘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사용하기 쉽지 않은 대사였을 것 같습니다만, 정말 용감하게도 그대로 사용해버려 놀랐습니다
회장은 Ambulate... 걸어보라 말하고, PERFECT... 라 중얼거리며 좋아합니다
R: Am I?
W: Perfect?
R: Your Son.
W: You are my creation.
제가요? 라고 말하는 로봇과 완벽하냐고? 라고 되묻는 회장
로봇은 SON이 맞냐고 묻는 것이었고, 회장은 'CREATION'이라 답합니다
W: What is your name?
D: David.
이름이 뭐냐고 이제야 묻는 회장에게 마침 눈 앞에 있던 다비드 상을 바라보며
"DAVID"라고 답하는 로봇
W: Why don't you play something.
D: What would you like me to play?
W: Wagner
D: Selection..
W: Dealer's choice.
W: ah...Entry of the Gods into Valhalla...a little anemic without the orchestra.
연주를 해보라고 지시하는 회장에게 무엇을 연주할까 되묻는 데이빗
바그너를 요청하는 회장에게 곡을 선택하라 하자 회장은 네 맘대로 하라는 명령을 줍니다
그리고 'Entry of the Gods into Valhalla'를 연주하는 데이빗
그러자 웨이랜드는 오케스트라 없는 연주라 ANEMIC 하다 답하는군요
피아노만으로는 음악이 다소 빈약하다는 의견을 표현합니다
이후 이 둘은 이러한 대화를 나눕니다
D: May I ask you a question, Father?
W: Please.
D: If you created me, who created you?
W: Ah....the question of the ages, which I hope you and I will answer one day.
W: All this, all these wonders of Art and Design, of Human ingenuity, all are utterly meaningless in the face of the only question that matters.
W: Where do we come from?
W: I refuse to believe that Mankind is a random by- product of moleculare circumstances.
W: No more than the result of mere biological chance.
W: No....there must be more.
W: And you and I, Son, we will find it.
회장의 다소 긴 혼잣말이 이어지지만,
결국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하는 질문은 매우 오래되었으며,
언젠가 데이빗과 함께 답하기를 희망한다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 많은 예술품과 디자인, 인간의 천재성은 이 유일하게 중요한 질문 앞에서 무의미하다 하죠
회장은 유전적 우연에 의해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하며 답을 찾을 것이라 말하네요
D: Allow me then, a moment to consider; You seek your creator. I am looking at mine.
D: I will serve you, yet you are Human.
D: You will die, I will not.
데이빗은 말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창조주를 찾지만, 저는 창조주를 보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을 섬기겠지만, 당신은 인간입니다. 당신은 죽을 것이고, 저는 아니지요"
참 용감한 AI입니다
전원 꺼버리면 어찌하려고 저리 건방지게 말하나 싶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회장의 저 눈을 보세요
그는 충분히 데이빗을 종료시켜버리고 영화를 5분도 안되어 끝낼 인물입니다
하지만 감독이 보고 있으니 다음과 같이 말하죠
W: Bring me this tea David.
W: Bring me the Tea.
첫번째로 차를 가져오라 말하기 전 회장은 깊은 한숨을 내뱉습니다
아들이라고 만들어놨더니 '당신은 죽을 것이지만 저는 아니지요' 같이 말하니 화가 날만 하죠
차를 가져오라 두번이나 명령할 정도로요
자막은 얌전하게 표현했지만, 아마 회장 말의 의미는 '차나 가져와라 데이빗' 이었을 겁니다
영상을 글로 풀어쓰다 보니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군요
이상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오프닝 시퀀스입니다
극적이거나 충격적인 장면이 있지도 않고, 별 달리 감명 깊거나 어려운 말이 나오지도 않지만
이 영화는 앞으로 2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5분만에 압축시켜 보여주거든요
아니 정확히는 관객이 무엇을 기대하며 보면 되는지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 대해서는 조금만 검색해보아도 수많은 해석들이 존재합니다
딱 봐도 수많은 상징을 넣었고, 비교적 명확하게 보여주며,
끝까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는 내용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화를 즐기는데 이러한 복잡한 상징과 의미를 꼭 이해해야 하나? 싶습니다
저는 저런 비싸보이는 의자나, 멋진 이름이 붙은 명화에 대해서 본 적도, 뚜렷한 관심도 없는데 말이죠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그너가 어떤 음악가이며, '발할라로의 입성'이라는 음악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알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클래식 음악 중 하나라 생각할거에요
감독도 이 사실을 모를리가 없습니다
80세를 훌쩍 넘기신 리들리 스콧 감독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그렇기에 감독은 의자, 피아노, 예술품, 음악, 다비드상 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의 예술품을 배치하며
이 중 하나는 보거나 들어본 적이 있겠지? 라고 하는듯 합니다
이러한 품목 선정에도 불안했는지 웨이랜드 회장의 입으로 직접 설명하기까지 하죠
"예술품과 디자인, 인간의 천재성은 이 질문 앞에서 무의미해진다"라는 대사를 통해 말이죠
아무튼 인간의 천재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다는 겁니다
한편 로봇은 인간의 형상을 완벽히 복제하고, 인간 사회가 축적한 모든 지식을 함유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심지어는 예술적 감각과 감정까지 지닌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그너를 선택한 회장의 음악은 알아서 고르라는 지시에 '발할라로의 입성'이라는 음악을 선택하였고,
다비드상을 보며 스스로의 이름을 데이빗으로 선정하였으며,
'인간'이라는 창조주의 유한함에 대해 인지하고 본인의 무한함과 비교하는 행동까지 이어가죠
그리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까지 합니다
"당신이 저를 창조했다면, 당신은 누가 창조했습니까?"
여기까지 보고 나면 로봇이 본인의 이름을 데이빗으로 선정한 것이 이해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비드상을 완벽함을 표현한 작품이라 평하니까요
흥미롭게도 감독은 지구 생명의 창조주를 '엔지니어'라 이름 붙였습니다
작 내에서는 인류가 붙인 이름이긴 하지만, 그들 또한 감독의 대본으로 선택한 이름이니까 그의 결정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왜 신적 존재가 아닌 엔지니어라 이름 붙였을까?
그 답은 다시 데이빗이 갖고 있습니다
"당신이 저를 창조했다면, 당신은 누가 창조했습니까?"
어쩌면 이 질문은 인류가 엔지니어에게 다시 물어야 했을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한 줄의 대사는 이 대사가 아닐까요?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 마음대로 만들어본 영화 해석이 너무도 재밌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른 훌륭하신 해석들이 너무도 많겠지만 전혀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들의 생각이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즐겼다는 것이니까요
미디어를 감상하고 즐긴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답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정답을 찾아 가는 것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