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매버릭 (2022)
코로나가 극장 관람이라는 문화를 총체적으로 바꿔버리면서 영상 미디어의 중심은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안방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꼭 영화관에 찾아가서 봐야겠다는 영화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 영화입니다
전 편 '탑건'을 감명 깊게 보았다거나, 톰 크루즈의 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전투기 나오는 영화는 큰 화면으로 보아야 재밌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죠
사실 탑건이라는 영화에 대해서 응답하라 드라마에서나 들어봤지 본 적은 없습니다
대충 대단한 영화였고, 전투기 조종사가 멋지게 나오며, 수많은 공군 사관생 희망자들을 모집했다는 소문만 알고 있을 뿐이었죠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러 간 근본적인 이유는 그저 영화가 재밌다는 소문 때문이라는 게 맞는 표현일 겁니다
그런데 웬걸, 재밌다는 소문을 듣고 간 영화가 정말로 재미있는 것이었습니다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오프닝 시퀀스와 극장을 가득 채우는 사운드, 항공모함 위 정비사들과 엔지니어들의 호흡, 그리고 수 많은 기계 장치들만 보아도 재밌는 것입니다
이 시작 10분 장면은 아마도 이전 작 '탑건'의 오마주인듯 했습니다만 놀라웠던 부분은 이 단순한 장면의 나열이 왜 재밌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는 그 소재에 대해 들었을 때 예상되는 그대로 입니다
'퇴역한 해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의 주인공이 후임 교육을 맡아 불가능한 미션을 수행한다'
이 한 줄을 들었을 때 어떤 플롯이 떠오르나요
이 영화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플롯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어떠한 반전이나 새로운 시도 같은 것을 넣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플롯 그대로,
관객이 예상하는 대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영화가 재밌습니다
그냥 재밌는게 아니고 실소가 나오며 재밌습니다
문화 산업이 성장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영화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투자 수단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혹자는 그러한 현상을 스필버그와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 탓으로,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탓으로 돌리기도 하며, 심지어는 마블의 히어로물은 영화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까지 합니다
그 시작이 어디에서였건, 현재의 영화 산업은 단순히 영상 매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의견과 이해관계가 교차되는 지점에 서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추측건대 그러한 변화의 시작은 필름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1분 1초가 돈이고 소중한 자원이던 과거와 달리 현재의 영상 매체 산업은 디지털 저장 장치의 발전과 함께 거의 무한한 생성이 가능해졌고, 개인이 소유한 시간보다 더 많은 영상물이 출시되면서 상대적으로 영상물에 대한 시간적 가치가 떨어지게 되었거든요
그렇기에 극장이나 배급사를 비롯한 영화 산업에서는 성공할 것이라는 확실한 작품만을 보여주게 되었겠죠
더욱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 영화는 더 자극적이고, 더 멋져져야 했습니다
그에 걸맞게 멋드러진 반전과 메시지, 메타포와 시청각 효과를 담아내야 했죠
그리고 다시 이러한 장치들에 의해 영화 산업은 더 많은 자본을 요하게 되었고, 성공적인 투자를 위해서는 더욱 더 확실한 작품만을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해지게 됩니다
결국 영화 산업은 발전했지만 성공 공식을 따르는 정형화된 영화만을 보여주는 패턴이 생성되었죠
안타깝게도 이러한 패턴은 특히나 명절 즈음 개봉하는 한국 영화에서 자주 보이기도 합니다
투자자의 개입이 이해는 되지만 한편으로는 자립할 수 없는 예술 업계에 대한 씁쓸함이 남는거죠
또 다시 잡생각이 길어졌습니다만
결국 탑건 매버릭이 재밌는 이유는 놀랍게도 단순합니다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죠
이쯤 해서 전투기가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고, 이쯤에서는 전투기 그만 보여주고 인물간의 관계를 보여주면 좋겠고, 여기서는 러브스토리를, 여기서는 인물 간에 갈등을, 이제는 마지막 임무를 위한 노력을 보여주면 좋겠다
관객들이 생각하는 족족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짜잔 사실은 이 아이는 네 딸이었답니다~ 라던가,
겉으로는 응원하면서도 뒤에서는 각종 무리한 공작으로 미션 실패를 꾀하는 타락한 정치인 같은
궁금치도 않은 반전 같은거 말구요
다만 그러한 흐름 속에서도 수 많은 배려와 고민의 흔적들이 엿보였습니다
무리해서 적국을 특정 국가로 설정하지도 않았구요, 인물간의 갈등이 억지스럽지도 않았으며, 심지어는 러브스토리 마저도 자극적이지 않도록 배려한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보여달라는 만큼만 딱 필요한 만큼 보여줬다라는 설명이 적절한 듯 하군요
그러면서도 영화는 원작에 대한 존중 또한 놓치지 않았습니다
영화 전반에 걸친 '탑건'의 음악이 그러했고, 전작의 장면을 '사진'으로 재연한다거나, '아이스맨'이라는 인물의 등장 또한 존중의 일부분이었죠
그와 더불어 퇴역 군인과 구형 전투기를 더 이상 불필요한 존재로 치부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차세대 전투기와의 전투를 경험으로 극복해내는 모습까지 멋지게 그려내면서 베테랑에 대한 찬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 산업을 비롯한 미디어 산업은 너무 복잡한 길을 가려 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를 그 자체로 즐기고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 뜻과 상징, 메시지를 찾으려 너무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것은 아닐까요
결국은 영화라는 것 또한 하나의 오락거리로, 즐기면 되는 것이었을텐데 말이죠
관객이 바라는 것은 어쩌면 그저 '재미'라는 단순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의 영화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그 영화 재미있어?' 이니까요
이 영화는 마치 알렉산더 대왕의 일화처럼 복잡하게 얽혀가던 문제를 단칼에 베어버린듯 합니다
그리고 세계의 영화 팬들을 향해 당당히 말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