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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된고양이레오 Oct 02. 2022

E06. 네, 네, 그러믄요

예스맨 (2008)

"청주 날씨는 어때요?"




'예스맨'에는 한국인이라면 왜라는 질문을 참을 수 없는 장면이 있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짐 캐리가 한국어를 배우는 장면인데요

하필이면 또 대사가 "청주 날씨는 어때요?"라고 다소 코믹한 장면으로 나와서

'정준하 씨는 어때요?'라고 많이 패러디 되기도 했죠



예스맨은 그 제목과 같이, 모든 것에 긍정적으로 대답하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만사 부정적으로 살던 그가 어떠한 계기로 인해 예스맨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면서 삶의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게 되고, 무리한 상황에서도 YES만을 강요 받게 되며 코믹한 상황을 연출한 영화였죠


아마도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가치와

삶의 슬럼프를 넘기는 색다른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당연히 현실에서는 말도 안되는 캠페인이지만,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설정이니까요




앞선 글들을 보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어차피 하려고 하는 말은 리뷰를 가장한 허튼 소리 같은 것들이니까요


다시 보니 너무도 부끄러워 지금은 지워버린 글이지만 사실 이 브런치의 첫 글은 

'인생의 노잼시기를 생산적으로 넘겨보자' 라는 주제였습니다

그러한 방법 중 하나로 선택했던 것이 글쓰기, 그리고 리뷰라는 형식이었던 것이지요


* 여기서 '노잼시기'는 인생의 슬럼프와 같은 시기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아마 단어의 분위기나 느낌으로 모두 이해하시겠지만 말이죠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가 찾아오는듯 합니다

하고자 하는 꿈은 원대했지만 침대에 누워 휴대폰 불빛에 몸을 맡긴 내 모습이 문득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새해에는 빡세게 다이어트 해서 멋진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은 연례 행사가 되어버리곤 하죠

인터넷 세상 너머의 누군가들은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왜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그러한 시기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입니다

브런치에 글을 써보기도 하고, 운동을 시작했으며, 

부정적인 생각은 줄이고 긍정적인 면만 보겠다 마음먹기도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세상은 마음먹은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다시 침대와 한 몸이 되어 흐느적 거리고 있고,

딱히 목적도 의욕도 없으면서 넷플릭스 목록을 정처없이 스크롤 하고 있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그러한 노잼 시기의 원인은 나에게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의 시간이 다르기에 그 이유 또한 다르겠지만 적어도 저의 노잼 시기는 그러했던 것이 맞는 것 같아요


한 때 저는 꽤나 부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만사 귀찮다 생각하고, 타인의 노력을 하찮다 여기기도 했고,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먼저 생각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결정 내리기 너무도 쉬웠고, 몸도 편했거든요


그러한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타인의 생각 또한 의심하기 시작하게 되더군요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진실일까'라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그제서야 무언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의 진의를 파악하려 노력하는 것은 너무도 진빠지고 힘든 일이었고,

편하려고 선택한 부정맨의 길이 오히려 나를 내면에서부터 좀먹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진의를 들여다본답시고 베베 꼬인 생각으로 바라보지 말고

표면적인 표현을 그 자체로 받아들여 주자고


글을 쓰면서 이 방법에 이름을 붙여보았습니다

"네, 네, 그러믄요"

라구요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내일 동아리 모임이 있는데, 한 친구가 갑작스레 가족 구성원의 질병을 이유로 불참을 선언한다 해봅시다

그 전의 저는 '이 친구가 오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는구나'하고 꼬인 생각을 가졌다면,

"네, 네, 그러믄요" 하고 그 친구의 말을 그대로 믿고 위로의 말을 건내는 건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 행동하게 되면, 

타인의 거짓말에 상처받지 않아도 되면서도 상대방의 말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쉽게 말하자면 죄수의 딜레마에서 착한 선택만을 골라 손해 볼지도 모르는 길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전략 또한 눈치껏 행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인간 관계에서 큰 상처가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조금 손해 보는 상황이더라도 좋은 뜻에서 양보한다는 생각으로 내어주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저는 아무것도 몰라용' 하는 바보 전략으로 가서는 안되는 것이겠지요

제가 아직은 속이 좁은 것일수도 있지만, 

내가 다 알고 있지만 내어 주는 것이라는 뉘앙스는 주어야 속이 편하더라구요



아마 저 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다른 전략으로, 또 다른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겠죠

인간관계에서의 전략이라는 것은 지구 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 만큼이나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중에 정답이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세상은 너무도 단조롭고 재미 없었겠죠


예스맨에서의 짐캐리는 'YES'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저는 '네, 네, 그러믄요'를 선택하며 노잼 시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이 현재 노잼 시기를 진입했던,

이미 지나와서 뒤 돌아보며 회상하고 있던,

앞으로 그러한 시기가 올 것이라 생각되던,

부디 현명한 방법으로 그러한 시기를 잘 넘기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시기를 넘긴 후

이 영화를 한번쯤 보셨으면 합니다


그 때 듣는


"청주 날씨는 어때요?"


는 또 다른 느낌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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