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조직의 울타리 안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0. 내가 쓴 책의 첫 문장, ‘고용되지 않고 고용하지 않겠다는 삶의 선언’이 부서졌다. 우스운 일이다. 지난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 9개월. 나는 다시 조직의 울타리 안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18장에 달하는 과제를 제출하고, 3번의 인터뷰를 거쳐, 글로벌 회사의 한국 지사를 총괄하는 포지션이었다.
1. 팀으로 함께 무언가를 일구던 호흡에 대한 허기 한 끗, 유니콘이 된 미국 회사의 제안을 거절했던 과거에 대한 아쉬움 한 끗, 그리고 다시금 억대 연봉 직장인이 되어 ‘나의 사회적 몸값’을 확인하는 비겁한 마음 한 끗. 그 모든 마음들이 한데 뒤섞여 현현된 현실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신에 들린 듯, 홀린 듯 그냥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 생의 구간을 반드시, 제 온몸으로 통과해야 했던 것 같다.
2. 그 짧고도 긴 터널 속에서 돈으로는 결코 치환될 수 없는 밀도의 경험들이 내 안에 쌓였다. 혼자라면 불가능했을 일들이 ‘팀’이라는 이름 아래 믿기지 않는 속도로 형태를 갖추던 시간들. ‘이게 되네?’라는 그 체험이, 내 앞날에 ‘완벽하지 않더라도 결국 될 거야, 할 거야’ 하는 기묘하고도 단단한 용기로 체화되었다.
3. 동시에 내가 작가로서 사업가로서 분명히 가지고 있었으나, 무심한 시간의 관성 앞에 당연해지고 흐릿해진 것들. 예컨대 그날의 몸 상태에 맞게 하루의 일정을 조절하는 일,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 선택, 출퇴근 시간을 비껴간 고속도로의 한적함, 매일 두 시간의 요가, 편한 옷차림으로 따뜻한 잎차를 내리며 일하는 정적, 언제든 의연하게 자리를 뜰 수 있는 결심, 그리고 내 삶의 고삐를 내가 쥐고 있다는 지엄한 주권까지.
4. 내가 가지고 있었으나, 가지고 있는 줄 몰랐던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의식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매 순간 노력으로 길러야 하는. 근육과 같은 감각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5. 나는 다시 제자리에, 제 속도로 돌아왔다. 1년도 채우지 못한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1년이라는 단위 또한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이 아니던가. 1년이건, 1개월이건. 다시 지속 가능한 나만의 속도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바로 자기 확신일 것이다. 내가 꿈꾸는 세계관을 내가 직접 빚고, 나누고, 파는 일. 그것이 글이건 제품이건 서비스건, 온껏 담아내겠다는 확신. 이제는 내가 스스로 담고 펼칠 수 있겠다는 직관이 나를 세웠다.
6. 그러니 내 철학을 담아, 미학을 담아, 자부심을 담아, 만들자. 오롯이 창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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