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그 미지의 불안 안에서 단 며칠만이라도 살아보는 걸로.
sep 23 2018 - oct 06 2018
캐리어를 끄는 대신 배낭가방을 메었다. 배낭가방을 메고 세계일주를 하는 내 모습을 종종 상상해왔었는데, 오늘 제법 비슷한 모습을 집을 나서기 전 거울 앞에서 봤다. 내 몸 만한 배낭가방을 메고, 길이 조절 끈을 바짝 조이며 다음 여행지를 향해 떠나는 모습.
매일 짐을 풀고, 매일 짐을 싸는 게 귀찮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배낭가방의 모든 지퍼를 야무지게 잠그고 호텔 방문 앞에 세워놓았을 때 기분이 좋다. 뭐 빠트린 게 없나 화장실을, 침대를, 테이블을 체크하고는 잠시 침대에 다시 누워있을 때는 더 좋다. 리셉션에 전화해 한 시간만 체크아웃 시간 늘려달라고 한 후 더 뒹굴거리는 건, 좋은 것을 넘어 풍부하게 존재하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어릴 때 배낭가방을 메는 것이 썩 어울리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여행에 있어서는 그런 조급함이 있다. 나이 들어 배낭가방을 메는 게 왜, 당일에 주변의 게스트하우스를 찾고,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또 다른 여행을 떠나는 게 뭐 어떤가 싶지만. 어떤 나이에 걸맞은 여행이란 건 없을지라도, 특정 형태의 여행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하는 게 더 용이하다. 용이성의 문제다.
25살까지는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몇 번 해보지도 못한 일이지만, 이젠 조금 더 내고 조금 더 좋은 호텔에 묵는 편이 좋다. 당일에 walk-in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어린 청년들과 한 방에 어울려 자는 일들을 그때는 재밌게 했다. 나도 함께 어린 청년이었고, 지금도 한참 어리다고 생각하고 살아야지. 하루는 네덜란드의 건장한 청년들이 새벽에 거하게 취해 들어와서는 얼마나 시끄럽게 굴던지. 참다 참다, 한 소리 했었다. 그런 기억들은 괜한 로망과 아쉬움을 만들지 않는다.
사실 배낭여행도 몇 번 못하지 않을까 싶다. 시간의 흐름만으로도 배낭은 생각보다 무게를 빨리 더한다. 허리의 무리 또한 정확하게 느낀다. 여행에 있어 앞으로 점점 더 용이하게, 더 여유 부리며, 그래 좀 손해 보지 뭐 하는 자세를 막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나중에는 하기 힘든 여행의 형태를 많이 경험해두는 것은 내게 본능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이번 여행을 준비함에 있어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던 일을 꼽자면, 너는 어떻게 된 애가 왜 그렇게 위험한 나라들만 골라서 가려고 하냐는 수많은 얘기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는 것이다. 내가 그런 소리에 꼼짝도 안 할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런 얘기를 계속해주는 그들이 신기하기도, 고맙기도 했다. 그들이 위험하다고, 하지 않는 게 어떻겠냐고 할 때 대게 그들은 내게 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건 대체로 나와는 무관한 일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 의지를 타인으로부터 지켜내는 것, 그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 일은 늘 비행기 티켓의 발권으로부터 시작한다. 가고 싶어 함의 의지만으로는 늘 충분하지 않다. 호텔 예약도, 동선의 최적화도, 꼭 해야 하고 먹어야 하는 리스트 만들기 따위도 모두 나중의 일이다. 그것들은 전혀 하지 않아도 나쁘지 않다. 이 여행이 두렵다면 그건 특정 대륙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결국 내가 알지 못하는 것, 미지에 대한 불안일 거야. 삶은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라면, 최근 내 불안은 미지의 불안으로 대체해볼 만했다. 그 미지의 불안 안에서 단 며칠만이라도 살아보는 걸로.
탄자니아에 도착하기 전, 에티오피아 공항에 내려 파우치를 내 손에 더 꼭 움켜잡고 화장실로 들어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래도 조금은 마음을 놓은 그 공간에서 파우치를 세면대에 내려두고 뚱뚱한 배낭가방에서 물건을 찾는 동안 일이 났다. 내가 가진 물건 중 가장 잃기 두려운 물건들. 핸드폰, 카메라와 같은 물건들이 통째로 없어졌다. 한 순간이었다. 감기약에, 시차에, 흑인이 아닌 인종이 내가 유일해 보이는 이 공간에서 나는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인파를 헤치며 customer service를 향해 직진했을 때 내 발걸음은 화장실을 들어갔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영어가 통할리 만무했다. 끝난 건 끝났다. 그들은 얻을 때는 나름 애정을 쏟아 어렵게 얻었던 것 같은데 끝나는 건 한 순간에 끝났다. 그래서 허무한 건가, 허무함에 말을 잃었다. 뭐 오랜 시간에 걸쳐 끝났다면 덜 허무했을까? 그래도 그것이 물건이고,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영역에 있는 사고인 게 어딘가 마음을 달랬다. 그것은 충분히 내 사지였을 수도 있고, 당연하게 생각되는 나의 생이였을 수도 있다. 원래 내 것이 아녔을 수도 있고, 이제야 내 것임의 생을 다한 것일 수도 있다. 큰 마음먹고 샀던 물건들, 내가 화장실을 가지 않았더라면, 세면대에 파우치를 올려두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들을 하며 앉아있었다. 그러면 사실 끝이 없다. 어쨌거나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켜내느라 괜한 긴장을 하는 동안, 정작 나 자신을 살피지 못한 내 책임이었다. 휴대폰과 카메라로부터 지배당하는 삶에서 잠시라도 벗어남이 어쩌면 강요된 여행. 그런 종류의 여행이 내 손 끝에 펼쳐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 갈 때 일부로 로밍을 안 해간다던가, 비행기 모드로 돌려놓는 건 내게 잘 살고 있음을 몸소 느낄 수 있는 행위이긴 했으나, 호텔도 예약하지 않은 생전 처음 가보는 아프리카라는 대륙에서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막막했다. 그럼에도, 약간의 불편함과 정적을 지불하고 늘 원하기만 했던 자유를 얻기로 했다.
맞다, 이번 여행은 호텔을 예약하지 않았다. 오늘, 오늘자 호텔을 예약하는 행위는 불안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오늘의 기분을 최대한 따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오늘 어디서 자고 싶은가의 문제는, 어제는 알 수 없었던 일이다. 하루는 로컬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마켓에 갔다. 브라우니 재료를 샀고, 그래서 부엌이 있는 호텔을 잡아 베이킹을 했다. 멀쩡하게 독일산 오븐이 새로 들어와 있었는데 전원 연결을 못해서 그냥 팬에 했다. 그 호텔을 잡은 것도 오븐이 있어서 잡은 건데 멍청하게 다 태워먹었다. 이걸 조금이라도 먹으면 3일은 덜 살게 될 것 같았다. '덜 살지 뭐' 했다. 탄 부분이 족히 89%는 되는 것 같은 브라우니를 통째로 씹어 먹으면서, 나는 어떤 성취감을 느꼈다.
사파리 투어를 하는 내내 독일 친구들이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 활동에 집중했고, 이 활동에서 나는 완전히 소외되었다. 내가 핸드폰이 없으니 비경 앞에서 핸드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사람들, 본인 눈이 아닌 카메라의 눈으로 풍경을 담는 사람들이 더 잘 보였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자동차에는 에어컨은 커녕 음악도 없었다. 창문은 자동문이 아니었다. 제법 팔에 힘을 주어 막대기 같은 것을 돌리면 끽끽거리면서 창문이 내려가고 올라갔다. 그 행위를 빈도 높게 반복하며 창문 밖을 보고 있었다. 동물과 동물이 서식하는 자연.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화두는 단단했다. 어떻게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같은 공간에 있는 그 누구도 내 생각을 읽지 못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했다. 단독자로 함께 하는 것. 고독 속에서 연대하는 것. 이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그 어떤 주제의 고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떠나기 전, 감기에 잠긴 목소리로 나 아프리카 가면 거기서 살림 차리고 안 돌아올 수도 있을 거라고 했는데 정말 이렇게 일 년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적어도 그 정도의 시간은 내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다.
당연하게 여겼던 전기, 인터넷, 따뜻한 물, 수압. 그런 것들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은 생각보다 더 놀라울 정도로 빨리 적응한다. 사파리 차에 오르는 첫날, 나는 차에 깔린 방석이 내 몸에 직접 닿지 않도록 노력하며 앉았다. 언젠가부터 사파리 차에서 가장 더러운 것은 방석이 아니라 모래와 망상으로 뒤덮인 나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맨발로 방석 위에 올라가 모래 바람을 맞다가, 그것이 지겨워지면 다시 그 자리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았다 다시 일어섰다 했다.
바다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대지의 끝이 보이지 않는 scenary를 몇 시간이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로 가만히 보고 있었다. 접속하지 않고 인풋도, 아웃풋도 없는 상태로 창 밖을 내다보는 일은 이미 정해진 행복한 일과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동물들을 발견하고, 기린이 고개를 숙여 물을 마실 때 다리를 벌려 키를 조절한다던가, 무표정인 사자가 정확히 내 쪽으로 걸어온다던가, 아기 얼룩말의 갈색 줄무늬에 털이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털이 갈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면서 없어지는 건가?
사람의 욕심이란 게 그렇다. 내 시야에 들어온 동물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을 지키고 그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공간을 확보한 채로 그저 바라보는 것. 그런 사파리 투어 차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무질서 속의 질서를 지키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그런 선상에서 동물원은 동물들을 우리에 가두고 심지어 다른 환경에 속하는 그들을 한 장소에 모아두다니. 그런 점에서 얼마나 기이한 공간인가.
내게 사파리 캠핑의 하이라이트는 캠프파이어도, 살짝 잠 오고 피곤한 노곤함을 핫 초콜릿으로 녹이는 밤도 아니고, 아침이다. 아침에 슬립핑 백에서 몸을 빼내어 캠프의 문을 열 때 살짝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는 순간, 나는 잘 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세렝게티의 산 모양이 마치 반구를 대각선으로 자른 것 같았다. 미래에 내 딸이 산을 그린다면, 뾰족한 세모 모양의 산뿐만 아니라 반구를 대각선을 자르거나 산에 굽이 굽이 보이는 길을 그릴 수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있지도 않은 타인을 대상으로 소유욕이 바탕된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 뒤를 이었다. 그때 영국 친구가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넓은 대지의 모든 끝이 산에 둘러싸인 형태라며 여기서 오래 살기엔 답답하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그제야 내가 그런 지형에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공간에서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산 모양이고, 내가 산을 보듯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타인도 그렇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더 유치하게는 내가 그런 환경을 만들어줘야지 했지만, 사실 그건 얼마나 건방진 생각인가. 오히려 타인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다른 시선을 선물 받았을 때 나는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드오니스 셰프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펌킨, 수주키, 당근 수프를 매일 밤 해줬다. 나는 이렇게 맛있는 수프를 내 생애 먹어본 적이 없고, 음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살 수도 있다는 걸 내가 가진 모든 세포로 느낀 저녁이 3번이나 있었다. 셰프가 요리할 때 괜히 옆에 가서 얼쩡거리는 시간들이 좋았다.
언젠가 만델라와 드오니스에게 팁을 건넬 때, 그들이 이를 받는 모습에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그들은 모른다. 이미 친구가 되어 그들에게 팁을 주는 게 뭔가 어색했던 터라 쭈뼜쭈뼛 팁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가벼운 손을 그들이 두 손으로 잡아줬다. 손과 손 사이에 종이가 예쁘게 담긴 악수를 하며, 눈을 맞추고, 진심으로 고맙다고, 아니 내가 더 고맙다고 했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장면. 이 팁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던 그들의 노동이 보상받는 순간이, 와 이렇게 빛날 수도 있구나. 노동의 대가로 내가 돈을 주는 순간도, 받는 순간도 있지만 나는 무형의 노동이 유형의 화폐로 교환되는 순간이 이토록 경이로운 경험을 처음 해봤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월말 월급날이 되어 스마트폰에 찍히는 숫자들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할 때, 나는 얼마나 허무했나. 매달 꼽히는 월급이 전혀 의미가 없는 때가 오더라도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할 것인가.
사파리에서 챙기면 좋았을 것들. 더 많은 검은 마스크와 망원경.
사파리 투어를 하는 동안 따뜻한 물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찬물 샤워에 수압이 정말 말 그대로 한 줄이였다. 그러다 4일에 걸친 사파리 투어가 끝나고 체인 호텔 중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호텔에서 뜨거운 물에 수압이 느껴지는 샤워를 지나치게 오랫동안 했을 때, 그 시간이 무려 뜨거운 물에서 미지근한 물로 변할 때 까지였을 때, 화이트 린넨의 침대에 몸을 눕힐 때 나는 온전히 행복했다.
세렝기티에서는 버짓 캠핑을 했었다. 말이 버짓 캠핑이지 사파리 투어 자체가 말도 안 되게 비쌌다. 캠프에서 벗어나서는 이 나라에서 가장 좋은 수면을 경험해봐야 하지 않겠냐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극 비성수기의 5성급 호텔 가격으로 이 나라 가장 좋은 호텔이나 리조트가 당일 예약 가능한 수준이다. 탄자니아가 매년 7%씩 경제 성장을 한다는데 이번 년에 새로 지어진 호텔들의 모습이 궁금하다며 화이트 린넨 킹 베드를 기준으로 호텔을 질렀지만, 사실 그냥 편하게 자고 싶었다. 그대로 한국에 들고 가고 싶은, 적당히 딱딱한 킹 침대와 내가 본 샤워실 중 가장 넓은 샤워실, 욕실까지 이어져있는 워터프루프 나무 바닥. 넷플릭스 스트리밍까지 되는 호텔에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나태한 돌 위 불가사리가 됐다. 밤 술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 나는 이미 불가사리가 되어 못 움직이겠다고 했다. 내가 꿈속에서 불가사리가 되었는지, 내가 실은 불가사리이며 지금 꿈을 꾸고 내가 되고 있는 건지, 어느 것이 사실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래도 로컬인 양 겁도 없이 밤에 나가는 건 늘 옳다.
다시 호텔로 들어와 suits를 몇 편 이어 보고 나서는 깨어나기 어려운 잠을 잤다. 유럽이나 미국, 아니 한국에서 조차 내가 어떤 좋은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서비스를 받더라도 항상 이 이상의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나. 그 존재의 여부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항상 더 나은 것에 대한 기대와 욕심, 그 시기가 늦어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부재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받은 서비스는 이 나라에서 최고의 것임을 인지할 때, 이런 경험에 놓인 내 기분은 정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서비스 자체에는 딱히 감흥이 없다는 건 놀랍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것을 누구와 어떻게 누리느냐. 그리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이동시간에 얼마나 재밌는 대화를 할 수 있냐의 문제. 그 스펙트럼에서의 위치다. 그래서 돈을 더 많이 벌어봤자 딱히 달라질 게 없을 거라는데 확신을 더했다.
탄자니아의 호텔이 다른 나라의 같은 급 호텔과 다른 점은 공간의 크기다. 공간 자체의 크기는 둘째치고 늦은 오후 시간이 돼서도 체크아웃을 재촉하지 않는 것은 마음의 크기다. 그리고 욕실에 세면대가 두 개 있는 건 정말 꽤 괜찮은 사치다. 넓은 공간에 꼭 필요한 것만 존재했다. 제한된 공간에 효율적인 가구 배치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공간에 그 가구가 각기 존재하고자 하는 곳에 존재하는 것. 이 두 가지는 다른 것이다. 후자로 구성된 공간에서 인간은 보다 더 큰 안식을 얻는다. 그곳에 있어야 해서 그곳에 있는 게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기로 하여 존재하는 것. 가구에게도 자유의지가 있는 것 마냥 가구를 내버려두면 그 공간 안에 있는 인간도 조금 더 자유롭게 자유의지를 가지고 놀 수 있다. 가구가 공간을 만들고, 재창조 할 수 있는 곳에서 인간은 본인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그러니까 내년 6월엔 더 넓은 공간의 전세를 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별생각 없이 지출하는 여행을 자주 하면서 가능하겠냐만은, 그래도 해야지. 나도 비로소 처음 알게 됐지만 아프리카 여행 경비를 만만하게 생각해선 안된다. 여행객은 로컬 물가로 여행이 가능하지 않다. 여행객의 물가는 늘 따로 정해져 있고 이는 로컬의 그것과 기본 3배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아이폰 xs를 질렀다. 글러먹었다.
여행하면서 내가 평소에 하는 운동들, 예컨대 요가나 승마 같은 운동들을 다른 나라에서 해보는 건 신나는 일이다. 그 나라의 스파를 받는 것도 빠질 수 없다. 탄자니아 여성들이 웨딩 전에 받는다는 프리웨딩 스와힐리 마사지를 받았다. 씻어도 씻어도 씻기지 않던 모래들이 다 씻겨나갔다. 내가 받아본 마사지 중에서 말이 필요 없이 적당한 압이었다. 스파룸의 시계는 정확히 1.2배속으로 세팅된 게 분명하다.
이번 년에 들어서 달라진 건 스쿠버다이빙 샵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는 거다. 다이빙을 시작하기 전에는 바다를 보면 그저 끝없이 펼쳐진 수면이 보였는데, 겉에서 보이지도 않는 수중을 상상하기 시작했다는 건 내심 스스로 뿌듯한 일이었다. 다이빙 신청 서류에 advanced diver이라고 적으면서 멋쩍었다. 로그 수가 적어도 몇 배는 차이 나보이는 프랑스 친구들과 배를 타고 20분을 더 나갔다. 그들에게 나의 부족한 로그수가 민폐가 되면 어떡하지 했지만, 막상 실전이 되니 내가 진정 어드벤스드 다이버라도 되느냐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갔다. 사실 선생님 없이 혼자 한 다이빙은 처음이었다. 다이빙 못한 지 몇 달이 됐는데 입수하니 그냥 몸이 기억해서 스스로 나아갔다. 나는 몸이 기억하는 경험들이 좋다. 머리로 배운건 누구보다 빨리 잊을 자신이 있다. 이번 다이빙에 있어 내가 생각해도 이퀄라이징만큼은 기갈나게 잘했던 것 같다. 프리다이빙 이퀄라이징에 비하면 스쿠버는 난이도가 껌이었다. 중성부력을 맞추는 건 조금 어려웠으나, 5미터 안전 정지만큼은 제대로 지켰다. 선생님이 들으면 칭찬해줄 것 같다. 오가며 뱃멀미 때문에 고생했지만, 그래도 해냈지. 다른 날에는 케이브에 가서 프리다이빙을 연습해봤는데 한참 멀었구나 했다.
여기 기사들은 시간 맞춰 픽업을 오고 매번 늦장 부리는 나를 조용히, 재촉 없이 기다려준다. 하쿠나 마타타. 다 괜찮단다. 그리고 내가 어떤 장소에 가서 즐기는 동안 기다리고, 다른 장소로 또 데려다주거나 호텔로 다시 와주는데 이런 경험이 데일리로 가능한 나라가 흔치 않다. 잔지바르섬의 마템왜에서 능귀까지 40분은 걸리는 거리를 데려다주고 기사가 어떤 어두운 거리에서 기다리는 동안, 나는 밤바다를 보며 끝내주는 해산물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러고 보니 여행 내내 감기 기운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사실 술을 단 하루라도 참으면 됐었을 것 같은데. 끝내주는 해산물 앞에서 술을 어떻게 참는 건지 몰랐다. 하루도 기침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끼니당 인당 2 접시는 기본이 아니었던 날 또한 없었다. 문어 카레는 정말 미친 맛이었다. 그리고 택시로 돌아와서는 나는 꽤 오래 기다렸을 그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 팁으로 마음을 대신하려 했다. 호텔로 돌아와서야, 저녁은 챙겼는지 물어봤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했다. 아이고 나는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되나. 그가 집에 돌아가 누구와, 어떤 저녁을 먹는지 마음 한편 신경이 쓰이다가도, 깨끗하고 차가운 화이트 린넨 베드 안에 들어가면서 행복하다는 말이 공중에 뱉어졌다.
아프리카에 가기도 전에 기대했던 건 아프리카의 밤하늘이었다.
제법 많은 날이 구름에 가려서 밤하늘의 별을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날 눈에 담기지 않는, 카메라로 감히 담을 생각 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밤하늘을 봤다. 별이 쏟아 내릴 것 같은 하늘에서 목성, 금성, 그리고 빨간색 토성도 봤다. 우리는 매일 같은 별, 해, 그리고 달을 보니까. 우리가 육체적으로 한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항상 연결되어 함께 하는 것이라고 나는 비로소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 밤 본 금성만큼은 네가 다른 반구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빨랫거리 한 개당 가격을 매기는 체인 호텔은 뭔가 멋없다. 여행의 반쯤 지났을 때 내가 특별히 더 좋아했던 잔지블루라는 부띠크 호텔에서 세탁에 있어 한 바구니당 7불을 매기는데 그게 또 그렇게 행복했다. 모래와 땀으로 범벅된 옷들이 햇빛에 바짝 말려 차곡차곡 개여서 돌아왔을 때, 나는 그 바구니를 받기도 전에 마음이 들떴다. 마음이 들뜬 순간이 높은 빈도로 있었다. 알람을 맞추지 않고 파도 소리에 일어는 것, private 해변을 보며 조식을 매일 같이 챙기는 것,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모르는 것, 해가 지면 아 저녁이구나 아는 것, 친구가 언제 올지 몰라 무작정 기다리는 것, 햇볕을 이불 삼아 선베드의 위치를 옮겨 다니는 것, 내 친구가 집 앞 까지 와서 전해준 비상약 패키지를 자랑스럽게 꺼내어 “얘 정말 자상하지 않냐”고 자랑하는 것. 그리고 자고 싶을 때 “나 잠 와” 하고 자는 것. 그건 어찌나 고맙던지. 그리고 다음 날 내가 어떤 얘기를 하다가 잠들었는지 물어보는 건 타인이 눈치 채지 못하는 나의 즐거운 일과 중 하나였다.
"어떤 일반론도 각자 삶의 특수성 앞에서는 무력하다"라는 구절을 아껴가며 읽고 있었는데 Phum Viphurit의 Lover Boy 음악이 내 앞으로 던져졌다. 그리고 이 '특수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술기운으로 말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또 얼마나 떠들어댔는지. 사실 이 문장에서 특수성은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보통의 일반론은 각자 삶의 특수성 앞에서 무력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일반론 앞에서 무력한 것이다. '특수성'이라는 단어는 일반론을 더 일반화할 뿐이다.
망상 1. 시간은 directionality가 없다. 이 대화 중 Conan Gray의 Idle Town을 들었다. 시간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게 아니다. 뒤쪽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4차원의 영역에서 흩어져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이론이 아니다. 망상이다. 세포가 태어났다. 세포는 다양한 시간에 동시에 존재한다. 존재하는 세포는 인식의 영역에서만 주체로서 존재한다. 다른 시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자가 주체의 무의식 넘어 영향을 미친다. 동시간에 함께 존재하게 된 타인과의 관계는 다른 시간 대에서는 다른 관계로 존재할 수 있다. 동시간에 함께 존재한 타인들은 많은 시간대의 나 중 특정 '나'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고, 이 함께하는 시간이 마치 동일한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고 생각하며 그 끝의 사정을 모른다는 이유로 끝이 없는 듯 산다.
하지만 시간을 경험하는 것의 끝이 원이라고 가정하자. 어쩔 수 없이 2차원 혹은 기껏해야 3차원으로 그려지는 원의 끝에 다다르면 나는 원의 가장자리에서 회전한다. 사후 세계라고 생각되는 영역이다. 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기보다, 쉽게는 팽창하는 것이라기보다 어느 한순간에 그 가장자리의 한 지점에 랜덤 하게 닿게 되는 것이다. 그 지점은 사실 평균 수명 100세라는 확률에 기댈 수 있는 게 아니라 randomness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라 생각보다 아주 빨리 그 끝에 닿을 수도 있다. 원의 끝에서 회전할 때 시간은 천천히 간다. 회전의 끝이 보일 때쯤, 생에 얼마나 단단한 삶의 질량을 만들었냐에 따라 제법 비례한 힘으로 튕겨져 나간다. 더 단단하고 무거울수록 더 멀리, 더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는 힘을 준다. 그곳에 닿으면 시간은 무한대로 존재한다. 그리고 더 천천히 시간이 간다. 사후 세계 이후의 모습이다.
가장 좋은 것은 다시 환생하는 게 아닌 멸하는 것이다. 어제가 있고 그제가 있어서, 그리고 3일 전에 내가 존재하여 내일도 내가 존재할 거라 믿는 건 마치 과학의 확률을 내 삶의 진리인 양 여기는 것. 그건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과학의 대전제 없이 인류의 발전이 있었겠냐만은 내일이 있고, 1년 후 내가 있고, 그래서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미루는 건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이다. 오히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미래의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냐 보다, 미래의 내가 어떤 순간에 생을 다할 것이란 것. 그래서 오늘을 기준으로 곧 닿을 끝을 계획하는 일 보다 미래를 기점으로 현재를 채우는 편이 낫다. 어떻게 채우냐의 기준은 나의 단단함에 도움이 되는 경험인가의 여부. 단단함은 부피보다 밀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빈 곳이 부재한 밀도는 깨지기 쉽다. 어떻게 단단함을 만들어나갈 것인가는 생에 중요한 질문이다.
어른스러움에 대해. 어른스럽다는 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사회라는 영역에서 더 유리한 방향을 알고 실천할 수 있음의 여부를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온전히 개인의 영역에서는 유리한 전략이 아닐 수 있다.
망상 2. 인간은 영장류 중 가장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 육지의 포유류 중 제일 느리고, 수중에서도 최악의 수영선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지구의 왕인 양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상상력과 관계한다. 상상력은 passive와 active로 나눌 수 있다. 이는 이론이 아니다. 망상이다. passive는 상상함의 행위가 인지 되지 못하는 상상의 장이다. 어떤 동물은 passive imagination만 가능할지 모른다. 본인이 상상하지만 상상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active imagination은 본인이 상상함을 인지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가능한 동물이 있을 수도 있다. 여기서 인간과 동물을 나누는 것은 active imagination에서 다시 나눠지는 종류로 설명될 수 있다. active imagination에는 (1) 있는 것을 상상하는 것와 (2)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있다. 이것들에도 이름을 붙이려다가 그만뒀다. 레이블링은 커뮤니케이션의 목적 외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전자는 원숭이가 어제 먹었던 바나나를, 다시 말해 실제 했던 바나나를 지금 먹는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후자는 지배배(이번 여행에서 새로 알게 된 노래인데 아프리카에서 요즘 핫한 노래 중에 jibebe가 있다. 무지 좋다)라는 가상의 음식을 상상하는 것이다. 인간은 후자가 가능하다. 과거에 인간이 날 수 있다고 상상했다는 건 아직도 경이로운 일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후자의 imagination을 바탕으로 어떤 믿음을 형성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그 믿음을 한 치의 의심 없이 실제인 양 가정할 수 있다, 혹은 실제인 양 행동할 수 있다. 실제 지배배라는 과일이 존재한다고 믿고, 그것이 아프리카에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로 갈 수 있다. 지배배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의한 떠남이 아니다. 반드시 지배배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근거한 떠남. 그런 종류의 떠남을 인간은 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인간을 날게 했고 24/7 연결되게 만들었다.
잔지바르에서 아루샤로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타본 비행기 중 가장 작은 경비행기를 탔다.
아루샤에 도착해 호텔에 짐만 맡기고는, 마지막으로 기깔나는 커피나 한잔 할까 하고 길가로 나왔다. 거기서 무슨 기적처럼 사파리 투어를 어렌지 해줬던 힐러리를 만났다. 우리가 마냥 만나기로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 그의 차에 올라타 그가 데려다준 로컬 식당에서 과일 플래터와 치킨을 뜯었다. 그는 내가 한국에서 얼마나 가난하건, 부자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중요한 건 친절함이란 얘기를 했다. 그래, 결국 중요한 건 우리가 이 시간에 여기서 만나 치킨을 뜯는 거지. 킬리만자로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는 이 여행이 비교적 오랫동안 그리울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아렸다. 이 또한 다 시간이, 또 다른 여행이 해결해주겠지만. 집에 도착하면 집을 버리듯 많은 물건들을 버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