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방법
“우리 앞에 놓인 한 끼 식사를 위해 몇 명이 수고했을까요?” 스님이 물었다. 기껏해야 10명 정도겠지 생각했다. 처음으로 대답한 사람이 100명이라 하자, 나는 뜨끔 놀랐다. 다음 사람이 50명이라고 그랬고, 그 옆 사람이 10명이라고 했을 때 비로소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님이 밥을 담는 그릇도, 참기름의 기름 한 방울도 생각한 수냐고 되물었다. 한 끼 식사를 위해 전 인류가 조금씩 다 기여했다는 대답을 마지막으로 들었다.
전 인류가 기여한 한 끼 식사라니. 전 인류의 부담감 앞에 먹기도 전에 체할 지경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식사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배가 부르기 전에 숟가락을 놓고, 억지로 먹는 것보다 남기는 게 덕인 양 살았다. 억지로 먹어서 맛의 한계 생산 감소를 경험하고 덤으로 지방도 얻어가며 PT에 돈을 또 처바르니, 숟가락을 놓는 편이 좋다. 술은 남기면 벌 받는다 배웠다. 하지만, 스님은 밥 한 톨님께서 내 몸에 들어가서 불성이 되길 바라며 긴 세월 우여곡절을 거쳐 내 밥그릇 속까지 왔는데, 내 입에 들어가려는 순간 실패했다며 슬피 우는 동화책 이야기까지 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도 밥 한 톨을 남기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었다.
달그락, 달그락. TV 소음 대신 밥그릇에 수저를 긁는 소리만 울렸다. 웃음이 삐져나왔다. 온전히 식사만 한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2018년 식사의 60%는 업무에 과부하 된 랩탑과 함께 했고, 20%는 사람들과 함께 했으며, 그나마 남은 20%의 식사마저 유튜브 또는 넷플릭스와 함께 했던 것 같다. 온전히 그 슬피 우는 밥톨님 생각만 하며, 이 식사에 기여한 전 인류를 상상하며 한 끼 식사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내심 뿌듯했다.
내가 반 정도 식사를 끝냈을 때, 같이 식사를 했던 사람들이 모두 식사를 끝냈다.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속도가 나질 않았다. 밥톨님이 이렇게 빨리 사라지는 건 안 슬퍼하는 건가. 남들 2배의 시간을 들여 식사를 마쳤다. 10명은 되는 사람들이 내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달그락, 달그락하는 소리가 내 쪽에서만 울린 지 10분이 넘어가자 전 인류가 기여한 식사에 대해 느낀 부담감만큼이나 무거운 부담감이 내 위를 눌렀다. 그때 친구가 밥 한 톨도 남기지 않겠다며 같이 그릇 소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밥 한 톨은커녕 기름 반방 울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그릇 소리를 끝까지 함께 내주는 마음은 어떻게 생겼을까.
친구가 자리를 비웠을 때 스님이 내게 정말 좋은 친구를 뒀다며 몇 번을 얘기하셨다. 딴 건 몰라도 그건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내 친구는 어느 날 내가 한 달에 하루만큼은 푹 쉬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신성한 삼겹살과 소주의 장 앞에서 이번 템플스테이를 제안하는 PPT를 했다.
미금역 카페에서 애니메이션 빵빵 터지는 버전과 담담한 버전을 몇 개씩 시도하며 4시간 넘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런 친구를 둔 사람은 이 지구에서 나밖에 없을 거라 온 동네방네 자랑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법복에 나이키 신발보다 고무신 어울리지 않겠냐며 미리 사놓은 고무신을 꺼내는 것도, 버스에서 들을 “유쾌함이 엑스라지”, “잔잔함이 엑스라지” 사운드클라우드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해오는 것도 실화다. 스님, 제 친구 최고인 건 제가 더 잘 알아요.
그리고 나는 새삼 내가 얼마나 밥을 천천히 먹는 사람인지 깨달았다. 사실 예전에도 알았던 것 같다. 알았는데 고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팀원들을 고쳐먹으려 했었다. 팀원들이 얼마나 밥을 빨리 먹던지 30분 타이머를 식탁 위에 두고 적어도 타이머 끝날 때까지 먹자며 그랬었다. 나는 타이머가 끝나고도 먹을게 더 남았었다. 한시가 급할 개발자분들이 타이머 프로젝트를 잔말 없이 따라줬는데 고마운 일이다. 빨리 먹는 습관이 위에 부담이 된다며 나름 그들을 걱정한 일이었지만은. 그들도 그들 속도대로 먹어야지 내가 뭐라고 그들 속도까지 바꾸려 했나 싶다. 그러고 보니 지금 함께하는 팀원들은 내가 천천히 먹는다는 걸 인지도 못하게 한 건가. 식사 속도를 맞춰주는 건지, 내가 눈치 보지 않고도 식사를 여유롭게 끝낼 수 있게 어떤 마법을 부리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내 속도대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스님이 설거지할 자원자를 선착순으로 모집했다. '설거지를 굳이 선착순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내 일행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손을 들었다. 얘네 뭐지. 그들은 그릇을 닦는 사람, 헹구는 사람, 물기를 닦는 사람, 그리고 그릇을 엎어놓는 사람의 역할을 자처해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나는 잔반을 처리하는 일을 도왔다. 나의 역할은 남은 나물을 비닐에 옮기는 일이었다. 나름 성심성의껏 나물을 옮기고 있는데, 스님이 영 불안했는지 비닐을 나물 가까이 가져가서 옮기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더 불안해 보이셨는지 비닐을 잡아주는 사람 한 명을 붙여주셨다. 그러고도 내 형편없는 젓가락질은 나물님을 위태롭게 했다.
스님이 나물을 바닥에 떨어트려선 안된다고 하셨다. “나물을 바닥에 떨어트리면..” 나는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네가 먹어야 돼” 혹은 “나물님이 슬피 울어”와 같은 말을 기대할만했다. 스님은 담담하게 “스님이 먹겠습니다” 했다. 나는 내가 이런 결의 말을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딸을 낳아선 안 된다는걸 직감했다. 마음이 덜컹해 꽤 오랫동안 떨렸다. 나는 나물님을 내 자식인 양 조심히 비닐에 옮겨 담았다. 단 한 개의 콩나물 머리도 바닥에 떨어트리지 않았다. 모든 생명을 내 자식처럼 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주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