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이나 책임이나 같은 말이 아니던가요?
연봉을 8배 성장시키는데 기여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저는 제가 기꺼이 사과를 건네는 순간이 떠오릅니다. 꼭 제 잘못이 아닌 일이라고 할 지라도요. 많은 경우 저는 사과를 어려워하는 팀원들을 봤고, 저 또한 사회생활 초기에는 사과가 어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과가 어려운 이유는 내가 사과를 하는 이유가 내가 잘못했음을 가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업무 중 사고가 생길 때는 보통 내 잘못이라기보다 유관부서의 오해, 내가 이끄는 팀원의 잘못, 그 누구도 저지를 수 있는 실수, 그리고 불가피한 외부적 환경이 원인일 때가 많습니다. 실제 원인을 두고 대체 왜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지 거부감부터 드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과를 하는 순간 사고의 원인이 모두 내 탓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 무섭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과를 하는 이유가 내 잘못과는 별개로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사과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사과를 유쾌하게도 할 수도 있습니다.
잘못이나 책임이나 같은 말이 아니던가요?
예를 들어, 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카페 소유의 아이패드를 망가트렸다고 가정합시다. 잘못은 아이가 했지만, 책임은 부모가 집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팀원이 실수한 경우에도, 책임은 팀원을 이끄는 리더의 몫입니다. 불량품을 만든 공장이 잘못한 경우에도, 제품을 교환해 주고 고객에게 사과를 하는 책임은 판매자가 집니다. 잘잘못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 부모가 아이를 훈계하고, 리더가 팀원에게 당부하고, 공장에서 판매자에게 보상을 하는 문제는 사후에 따질 일입니다. 당장의 사과와 그에 대한 책임은 부모, 리더, 그리고 판매자가 집니다.
위 예를 통해 우리는 사과를 하는 주체에 대한 한 가지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사과를 하는 주체는 사과를 받는 사람에게 가장 최적화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카페 주인은 아이로부터 사과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카페 주인에게 사과하고 배상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 최적화된 사람은 아이의 부모입니다. 사과에 있어서 잘못과 책임을 분리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꼭 잘못한 사람이 사과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 사과를 받는 사람으로부터 사과를 하고 책임을 지는데 가장 최적화된 사람이 나구나? 그래서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내가 사과하는 것이고? 그 사과를 건네는 시기는 지금이고, 잘잘못은 사과 이후에 파악해 봐야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최적화된 인간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라니, 나라니. 사과가 유쾌해지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