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방화범 엄마를 사랑했지만, 떠나야 살 수 있었다

내게 익숙했던 우리 집의 가난함은, 끝없는 인내로 점철된 내 어린 시절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제일 괴로웠던 것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들을 참아야 한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런 것쯤은 얼마든지 참을 만했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생각했다.


나를 견디기 힘들게 만든 것은 그 가난함이 우리 집 가장이었던 엄마에게 주는 스트레스였다.

엄마가 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우리 집의 공기는 그 기분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고,

나는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제발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기를 매일 눈물로 바랐다.


나는 그 가난을 어떻게 해서라도 해결하고 싶었고, 그렇게 성인이 된 직후 스무 살 1월부터 바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나도 내가 이 집의 해결사가 되는 길을 걷고 있는지 꿈에도 몰랐다.

나는 그저 내 가족을 사랑하는 K장녀였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경제적 문제라면 더더욱.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한 덕에 20대 초반에 받을 수 있었던 대출을 시작으로, 내 신용과 경제력으로 이 집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내가 우리 집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가장이 되는 무게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녀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내 신용과 내 경제권을 모조리 엄마에게 넘기기 시작한 스무 살.

그 후로 그 생활은 바로 얼마 전까지 쭉 이어졌다.




가족을 사랑하는 K장녀의 사랑과 효심.

착한 딸로 살아가는 것이 이런 것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경제적 호구가 되는 길이었다.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 절대적인 위치에 있던 엄마는 내 신용을 계속 자기 호주머니처럼 사용했고,

나는 그것에서 비롯된 책임감만 어깨에 지고 살아갔다.


마치 불을 지르는 방화범 옆의 소방관처럼, 불을 지르면 내 소방 호스를 계속 사용하게 두었다.

10여 년간 문제를 그런 식으로 해결하면서도


"이 불? 내가 더 안 번지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잠깐 호스 한 번만 쓸게."라는 방식의

그녀 말만 믿으며, 나는 그저 더 주지 못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상황을 나아지게끔 알아서 잘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더 도와주지 못해 괴롭다고 느끼면서, 내 스스로의 욕망과 기회가 차단되고

점차 나를 잃어가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이 생활에 젖어들며 모두가 다 같이 수렁에 빠지고 있었다는 것을,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지금에야 제대로 깨달았다.



거리 두기, 탈출에 성공한 지금.

그녀가 내 인생을 이용하며 만든 흔적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하나씩 하나씩 지워가는 중이다.


아직 신용도는 좋지 않아 1금융권은 어렵고, 매달 원리금 상환을 빠듯하게 갚으며 3평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


그래도 불을 계속 지르고 있는 방화범이 옆에 있지는 않으니,

이대로 성실하게 살면 그 흔적을 전부 없애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한다.


때로는 거리를 두는 것이 사랑일 때가 있다.

지지고 볶아도 옆에 있어야지만 사랑인 것은 아니다.


그래, 나는 지금도 효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작정 나온 것이 지금 당장은 서로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 천하에 둘도 없는 나쁜 딸이겠지.


하지만 계속 그 수렁에 같이 있었다면, 모든 식구가 다 같이 꼬르륵.

정말 죽을 만한 위기가 왔을 때 더 이상 활용할 내 신용이나 내 능력이 다 고갈되었을 때,

그땐 다 같이 죽는 것이다. 정말.


나는 내가 살고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탈출했다.


지금 당장은 마음 아프고 어려워도, 내가 제공하는 해결책 없이 스스로 불을 내지 않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것이 엄마와 다른 식구들, 그들이 살아갈 능력을 조금이라도 배우는 길이 될 것이고,

그게 그들을 성장시킬 것이다.



이렇게 그들을 위하는 게 진짜 사랑 아닐까.



나는 사랑해서 떠났다.
죽고 싶지 않아 떠났다.
살고 싶어서 그만뒀다, K장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