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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Jul 24. 2017

스물다섯의 런던

안녕, 애증의 도시 런던!


다음은 지난 2016년 9월 1일, 한국을 떠나오며 썼던 일기이다.




퇴사 후 출국까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는 것이, 엄마는 불만이었다.


“왜 그렇게 여유 없이 출국 일정을 잡았어. 시간이 너무 없잖아. 너 보약도 해먹이고, 먹고 싶은 것도 다 해줘야 되는데.”


무엇이든 혼자 해내고 싶었던 나지만,

결국 엄마의 마음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되는 나.


엄마는 출국이 임박해서까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갈비찜, 잡채, 오리고기를 해 내어주고.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잔뜩 냉장고에 깍둑 썰어 넣어놓았다.  “이건 너만 먹어.” 일러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출국장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잡던 손을 놓는 순간, 엄마는 “엄마와 아빠는 네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게 늘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했다.


씩씩한 척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뒤돌아서는 순간. 

겨우겨우 참았던 눈물이 팡하고 터져버렸다.




그렇게 올라오는 눈물을 목구멍 뒤로 꾸역꾸역 삼켜가며 스물다섯 살의 나는 영국 런던에 도착하였다. YMS(Youth Mobility Scheme)* 비자를 취득하여 영국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하면서 일을 하여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YMS(Youth Mobility Scheme), 다른 말로 워킹홀리데이라고 불리는 이 제도는 만 18~30세의 우리나라 청년들이 영국에 체류하면서 관광, 취업, 어학연수 등을 병행하며 현지의 문화와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현재 위와 같은 비자를 취득할 수 있는 국가로는 유럽지역의 영국, 독일, 덴마크, 체코, 아일랜드, 프랑스 등 / 아시아지역에서는 대만, 홍콩, 일본 등 / 그리고 기타 호주, 이스라엘 및 칠레 등이 있다.

신청 조건, 기간 등의 보다 자세한 정보는 외교부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http://whic.mofa.go.kr/index.do)에서 얻을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런던에서 맛있는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London, 2016)
런던의 초가을 하늘 (London, 2016)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는 벌써 런던에 산지 9개월이 넘어가고 있는 시점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스물다섯이던 내가 무슨 용기가 나서 여기까지 혼자 오게 된 건지 참 기가 막히기만 하다. 단 한 명의 친구도, 가족도 없는 이곳에 혼자 뽈뽈 배낭 메고 와서 일 해보겠다고 무턱대고 비행기 타고 온 작년의 내가 참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때 그렇게 무모해줘서 고맙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다시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때의 그 무모함 혹은 용감함 덕분에 나는 정말이지 셀 수 없이 많은 경험을 했고 그러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그리고 '나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알아가는 중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방법 같은 것들. 나도 알지 못했던 내 깊숙한 곳의 못나고 약한 부분들. 나는 이 곳에서 그런 것들을 배워가고 있다. 사실 런던으로 넘어올 때 마음속으로 많은 것들을 기록하기로 다짐했었다. 사진으로, 또 글로.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수개월 동안이나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더라. 자잘한 일기나 메모는 꾸준히 적어왔는데 지금 와 펼쳐보니 대부분이 욕이더라..(씁쓸) 그만큼 힘들고 괴로운 순간들이 너무나 많았다. 첫 몇 달 동안은 외로워서 많이 울었고, 그 후로는 외로움보다는 인간적인 고민과 좌절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다. 


어둑어둑 (London, 2016)
초점이 잡히지 않는 어두움 (London, 2016)

영국 워킹홀리데이는 대학생들이 휴학하고 어학 및 여행의 목적으로 영국으로 넘어와 주로 서비스직(카페, 레스토랑, 숙박업, 세일즈 등)에 종사하는 케이스가 (개인 체감상) 절반 이상인 것 같다. 내가 아직 대학생이었더라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며 이곳저곳 여행했다면 참 좋은 경험이 되었겠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워킹홀리데이의 기회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았다. '경험'보다는 '경력'이라는 것을 쌓아보고 싶었다. 영국으로 떠나오기 전 졸업을 후딱 해치워버린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졸업 전, 휴학 당시에는 '학교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이 족쇄처럼 느껴졌었다. 학교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또 이 곳에서 '취업'이라는 것을 해내기 위해서는 '학위'가 반드시 필요하기도 했고. 학교에서 벗어나 사회라는 파도 속에 내던져져 보니 예전엔 '족쇄'라고 느껴지기만 했던 학교가 사실은 얼마나 든든한 '믿는 구석'이었는지.. 나는 그걸 이제야 안다. 영국도 아닌 (영국인의 시선에서) 한국의 이름 모를 어느 대학교의 학위, 콩알만 한 인턴경력만 달랑 들고 전 세계 프로페셔널들이 다 몰리는 런던에서 구직을 하려 하니 그게 처음부터 잘 될 리가 없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고 지원을 마구마구 해보고 싶었지만 웬걸, 직업 검색란에 무얼 검색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서 키보드 앞에서 손가락을 멈추고 멍하니 화면만 응시하고 있기 일쑤였다(사실 처음엔 전공 관련하여 희망구직 분야가 뚜렷했는데 생각이 많이 바뀌어갔다). 그제야 나는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무얼 제일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를 탐색한다는 건 그게 언제건 늦는 법이 없으며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그걸 가족도 친구도 없이, 당장 방세 내야 될 날짜가 다가오는 만큼 하루하루 영국에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져가는 압박감 속에서 하려니 혼자서 얼마나 힘이 들던지. 나 여기까지 왜 왔지,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그러는 와중에도 배는 고파서 밥도 차려먹어야 되네. 외롭다. 등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런던에 와서 간간히 용돈벌이라도 할 심산으로 프리랜스로 번역일을 잠시 하기도 했는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해프닝까지 겹쳤다(지금까지도 임금체불이 밀려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런던에 도착한 지 한 달여만에 일을 시작하게 되기는 했고, 그러다 보니 첫 6개월은 출퇴근하다가 다 지나갔다. 말이 너무 길어졌는데, 그러니까 이렇게 마음의 여유가 너무나도 부족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적어내기가 녹록지 않았다. 그동안 해외에서 지내는 지인들을 보며 마냥 좋아 보여 부러워했는데 그들도 사실은 얼마나 많은 감내를 해왔을까, 어려움이 참 많았겠구나 싶더라. 한국에서 나를 바라보는 지인들도 가끔 마냥 내가 행복하고 여유로운 줄 아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결코 그 모습이 다가 아니다. 런던에서 지낸 지 9개월이 넘어가는 지금에 와서야 뒤돌아보니 치열하게 부딪히고, 좌절하고, 생각하고, 겪어내 왔던 그동안 나만의 이야기가 참 많이 쌓였구나 싶다. 그래서 나는 이제야 차근차근 나의 개인적인 런던 이야기를 풀어나가볼까 한다.


London, 2016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들과 더불어 나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정보성의 글도 올려보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바쁘고 비싼 도시 런던에서 집을 구하고 구직을 하는 과정이라던가, CV작성 및 글로벌 기업 면접 준비 팁 같은 것들이 될 것 같다. 내가 런던에서 쌓은 프로페셔널 경력들과 그를 통해 경험했던 것들, 앞으로 나아갈 길,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런던/영국의 모습들까지 천천히 풀어나가고 싶다. 런던에서 나는 분명히 많이 컸다. 여행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것들을 보고 느낀다. 죽어도 마주하기 싫었던 내 약점들까지도 나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만의 규칙이 점점 분명해지고 취향은 단단해져 간다.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구분해낼 줄 알게 되었으며 좋아하지 않는 것에는 No라고 대답해야 함을 이제 안다. 이제 나는 스물여섯 살이 되었다. 이십 대 초반 때와는 여전한 듯 여전하지 않은 구석들이 많아졌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어이없을 만큼 단순한 사실을 매일매일 조금씩 깨우쳐가고 있다. 내 삶의 우선순위들이 명확해져 간다. 나에게 큰 가치를 갖는 것들이 생겨간다. 내 곁에서 나를 지켜봐 주는 내 사람들, 그들에게 감사할 줄 안다. 런던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2016년 스물다섯의 무모했던 나에게, 참 눈물 날 만큼 고맙다. 


London, 2016


나의 개인적인 런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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