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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Nov 13. 2017

 런던에서 집 구하기

북런던의 한 칸짜리 내 공간

*이 글에서 '집'은 하우스/플랏 매매가 아닌 월세 렌트를 의미합니다.




이런 말이 있다.

"런던에서 집을 구하면 못 할 것이 없다" 고.

그만큼 런던에서 집을 구하는 일은 참.. 어렵다.


왜 유독 런던에서 집을 구하는 일이 어려운가 하면,

첫째로, 런던에서 집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자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 및 학생들도 많아 수요가 굉장히 높다. 어쩔 수 없는 멀티내셔널 대도시의 숙명이랄까. 때문에 괜찮다 싶은 집은 정말 빠르게 빠져나가고, 한 번 뷰잉을 다녀온 후  '생각해보고 연락드릴게요'가 안 통한다. 조금이라도 괜찮다 싶으면 그곳에서 당장 결정을 해야지 안 그러면 그 집은 몇 시간 후면 이미 다른 사람이 채가고 없다. 종종 입주할 사람에 대한 조건을 거는 곳도 있다. 학생은 안되고 무조건 직장인만 받아준다거나, 심지어 reference를 요구하기도 한다.

둘째, 런던은 이미 잘 알려져 있듯 집값이 터무니없을 만큼 비싸다. 집을 아예 매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렌트, 즉 월세 가격 역시 상상초월이다. 시내에서 벗어날수록 가격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지만, 이 곳 런던은 집값뿐만 아니라 교통비도 비싼 곳이라 월세로 살면서 시내로 통근 및 통학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월세가 '그나마' 싸다는 이유만으로 시내에서 먼 곳으로 나가는 것이 크게 이득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런던의 거주 특성이 한국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고 유럽 대부분의 도시들이 그러하듯 이 곳도 대부분의 집들이 낡고 오래된 경우가 많다.  안 그래도 월세도 비싼데 그 가격만큼의 시설이나 컨디션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미이다. 서울의 완벽하게 보수된 아파트에서 살던 나는 런던으로 이사한 초반에 이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또한 그렇지 않은 도시가 어디 있겠냐 마는, 런던에서 안전한 곳은 안전한 반면(그래도 서울과 비교할 만큼은 아니다) 그렇지 않은 곳은 정말이지.. 너.. 무.. 무섭다..(무서운 동네에 대한 내용은 아래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다.) 때문에 집에 돌아갈 때마다 두려움에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안전하고 깔끔한 지역을 잘 고려해서 선정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비싼 교통비 및 치안을 고려해서 살 곳의 위치를 선정하는 것부터 골치가 참 아프다. 월세는 말도 안 되게 비싼데 웬만한 집들은 낡고 오래되어서 도저히 이만큼의 돈을 주고 살만한 곳이 아닌 것 같다. 운이 좋아서 괜찮은 가격에 괜찮은 집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 집을 노리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기 때문에 경쟁이 꽤나 치열하다. 그래서 런던에서 맘에 쏙 드는 집을 찾아 이사까지 완료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아주아주 조금 덜 어려운 정도이다. (조금 과장해서..!)


런던의 집들. 아파트나 빌라가 많은 서울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London, 2017)

처음 런던으로 넘어오고 집을 구하기에 앞서 개인적으로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런던에서 집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나만의 명확한 기준을 세워서 그 기준에 맞는 집만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작정이었다. 그 기준은 1. 지역, 2. 가격, 3. 집 형태, 그리고 4. 플랏 메이트 이렇게 네 가지였다.


1. 지역

위에서 한 번 언급했듯 런던에서 지역 선정이 중요한 이유는 교통과 치안 두 가지 때문이다.


1-1. 교통

처음 집을 구할 때만 해도 직장이 정해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일의 routine을 고려해서 교통을 가늠해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런던 central을 기준으로 삼아 central로 왔다 갔다 하기에 용이한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그렇다고 해서 역에서 가까운 곳만을 선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역 근처는 물론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하다는 큰 장점이 있지만 대신 그만큼 소란스럽고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역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더라도 아늑하고 깔끔한 곳, local의 느낌이 살아있는 동네를 선호했고 이런 경우라면 역까지 도달할 수 있는 버스가 가까이에 있는지 그리고 주로 사용하게 될 역이 central까지 잘 닿아있는지를 살폈다.


런던은 서울처럼 1호선 2호선 등이 아니라  Victoria line, Piccadilly line, District line 등의 이름이 붙어있는데 Piccadilly line의 경우 히드로 공항까지 한 번에 연결되어 있고 시내 중심에서부터 시내 외곽까지 길게 연결되어 있지만 굉장히 느리고 연착도 잦다. 반면 Victoria line은 역도 몇 개 없고 지하철의 그나마(?) 상태가 괜찮을뿐더러 속도가 빠르고 고장도 덜해서 추천하고 싶은 line이다. Jubilee라인은 굉장히 깔끔하고 심지어 스크린 도어가 있는(..!) 역들도 몇 개 보았다. 때문에 괜찮은 line 중 하나이다. 지역을 고를 때 어떤 지하철 line이 지나가는지도 꼼꼼히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1-2. 치안

사실 교통보다도 훨씬 중요한 게 치안이다. 아무리 교통이 편리하고 그 외의 모든 면이 다 마음에 든다고 해도 주변이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면 리스트에서 과감히 지워야만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런던의 '안전하지 않음'은 서울의 '안전하지 않음' 기준을 훨씬 웃돌기 때문. 그렇다고 해도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고 위험하다고 소문난 지역에서도 별 탈 없이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고 사람들이 기피하려는 동네가 사실은 사람 냄새나는 정감 있는 곳이라거나 그 지역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유니크한 곳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직접 런던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이 동네는 절대 안 되겠다고 느낀 곳들이 몇 군데 있었다. 혹시 런던에서 살 곳을 구하면서 지역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다음의 동네들은 피하시기를 권하고 싶다.  첫 번째는 런던 3 존의 Turnpike Lane. 처음 방을 알아볼 때 이 동네에서 역에서도 가깝고 무엇보다 가격이 3 존 치고도 굉장히 저렴한 방을 발견했었다. 사진 상으로 봤을 때 방도 널찍하고 집 자체는 오래된 건물이지만 내부공사를 마친 후라 화장실도 모던한 신식이고 여러모로 괜찮다는 생각에 바로 뷰잉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역시나 저렴한 가격과 역에서 가깝다는 조건에 이 집에 입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뷰잉 약속이 밀려 어두운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뷰잉을 갈 수 있었다. 실제로 눈으로 본 집은 저렴한 월세에 비해 훨씬 더 괜찮은 수준이었다. 사진에서 본 그대로였고 무엇보다 이미 이 집에 살고 있는, 앞으로 함께 살게 될 플랏 메이트들이 너무나 친근해 보여 잘 어울리며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이 집을 포기했던 이유는 역시 안전하지 않은 동네 분위기 때문이었다. 뷰잉을 갔을 때가 늦은 시간이라 이미 어두운 상태였다. 나는 주로 뷰잉을 갈 때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일찍 가서 동네를 쭈욱 걸어 다니면서 둘러보고 가까운 슈퍼마켓이나 상점들을 살펴보곤 했는데 그때 마침 슈퍼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여성 두 명에게 달려드는 노숙자를 목격하고 만 것이다..! 그 여성 두 명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재빨리 도망갔고, 이 집에 이사 오게 된다면 매일 드나들게 될 슈퍼가 바로 그곳이었을 텐데 그런 광경을 목격한 후로는 도저히 안심하고 다닐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집에서 멀지 않은 한 길가의 길을 걷다가 나의 팔을 무작정 잡고 내 길을 막은 남자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아서 거의 울 뻔했다. 그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 동네가 dodgy 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더라. 두 번째 안 좋은 지역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곳은 역시 3 존의 Seven sisters. 이 곳은 뷰잉을 위해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weed냄새가 진동을 하던 곳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사실 유럽 곳곳에서 weed냄새는 꽤나 흔히 맡을 수 있다. 합, 불법을 떠나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통용되는 분위기라서 그렇다. 그렇지만 역시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사실. 그것도 으슥한 뒷골목이나 프라이빗한 공간이 아닌 대로의 버스정류장에서부터 그런 냄새가 나는 곳이라면 내가 '집'이자 '우리 동네'라고 여기고 싶은 곳은 아님이 분명했다. 사실 이곳도 굉장히 dodgy 한 곳으로 익히 알려진 지역이기도 해서 과감히 리스트에서 지웠다. 위에서 언급한 두 곳은 모두 북런던으로 주로 북런던 하면 남런던보다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북런던도 북런던 나름이고 남런던도 남런던 나름이기에 '정답'이란 없는 것 같다.


결국 나는 여러 곳들을 뷰잉 다니며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갔고 결국엔 역에서는 멀지만 소란스럽지 않으면서도 가족단위의 가구가 많아 학교도 여러 개 있고, 젊은 프로페셔널들이 모여드는 아담하고 아늑한 북런던의 Crouch end라는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된다.


이 많고 많은 집 중에 내가 누울 곳 하나 찾기가 왜 이렇게 힘이 든건지! (London, 2016)


2. 가격

런던에 산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렌트비를 감당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략 더블룸 한 칸이 80-100만 원. 물론 화장실과 부엌은 공용이라는 전제 하이다. 처음에 나 혼자 살아야 할 방을 구할 때 예산을 600파운드(약 90만 원) 이하로 잡았다. 웬만하면 500파운드 대에서 괜찮은 방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런던 2 존에는 500파운드 초, 중반은 거의 없고 주로 500파운드 후반대만 더러 있는 수준이었다. 한 번은 한 달 580파운드 정도(85-88만 원)하는 방을 찾아서 뷰잉을 간 일이 있었는데, 1층은 상가로 샌드위치를 파는 카페가 있었고 그 위 2층-3층에 거주하게 되는 주상복합 구조의 집이었다. 이런 주상복합 집들의 특징이 복도와 계단이 굉장히 좁다는 것인데 그 집도 마찬가지였다. 그 점부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글쎄 그 좁은 계단 중간에 냉장고를 놓고 쓰고 있더라. 부엌에 냉장고를 놓을 공간이 없어서.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샤워실과 부엌이 붙어있었다. (...) 아니, 샤워실이 부엌 안에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마땅한 샤워 공간이 없어서 그렇게 간이 공간으로 샤워실을 만든 것 같았다. 아, 물론 이 냉장고와 부엌, 샤워실은 모두 4명이 함께 쓰는 공용시설이다. (하하) 그래 놓고 거의 90만 원 돈을 내야 한다니. 나는 이 방을 보고 나오자마자 길가에서 소리를 내어 엉엉 울고 말았다. 런던이라는 도시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더 혹독한 곳인 것 같아서, 절대 내가 가진 돈으로는 내가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곳에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좌절감과 무력감에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저들은 어디에 사는 걸까'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쯤 나는 괜찮은 방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결국은 나의 처음 예산을 초과하게 되고 말았다.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집다운 집에서 살자. 는 마음에서였다.


3. 집 형태

집 형태는 크게 하우스, 플랏, 스튜디오로 나눌 수 있다. 하우스는 주택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고 플랏은 빌라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스튜디오는 원룸 정도랄까.


-하우스-

영국에는 빅토리안 혹은 에드워디안 양식의 2-3층 주택이 흔히 있다. 대부분 가족단위의 가구가 사는 곳이다. 이런 하우스들은 주로 앞 혹은 뒷마당을 끼고 있고 거실, 부엌, 방 2-3개 혹은 많게는 5개까지도 갖추고 있다. 하우스를 셰어 하게 된다면 거실, 마당, 화장실을 공유하고 각자 방을 사용하게 된다. 가끔 거실마저도 리셉션 룸이라는 이름을 붙여 방으로 만들어 버린 후 세를 주는 경우가 있어서 하우스에 산다고 해도 반드시 거실이 있는 것은 아니다.


-플랏-

플랏은 우리나라 빌라나 아파트 같은 건물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각 층마다 집이 있고, 그 집 안에는 부엌, 화장실, 여러 개의 방이 있고 이 방들을 셰어 하게 된다. 거실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다. 커플이나 친구들끼리 모여 1 bed room 혹은 2 bed room flat을 통째로 빌려서 셰어 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는 경우도 많다. 건물 전체가 플랏일 수도 있고, 1층은 상점인 주상복합의 형태일 수도 있다.


-스튜디오-

스튜디오는 원룸의 개념인데, 셰어 하지 않고 독립된 부엌, 화장실이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주로 혼자 혹은 두 명이 함께 살게 된다. 스튜디오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셰어 하우스/플랏보다 렌트가 비싸다.


나는 이 중 셰어 할 수 있는 하우스 혹은 플랏만을 고려했다. 그중에서도 주상복합은 우선순위에서 가장 아래로 두었다. 셰어 하는 곳으로 입주하고 싶었던 이유는 가격의 이유가 역시 가장 컸다. 혼자 사는 스튜디오 월세를 매달 감당할 만한 돈이 그 당시에는 없었다. 또한 혼자서 런던에 온 만큼 셰어 하면서 만나게 되는 플랏 메이트들이 나의 소중한 인연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외로움도 극복하고 좋은 인연을 만난다면 하루하루 재미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4. 플랏 메이트

다른 누군가와 한 공간을 셰어 하며 살아야 한다면, 기왕이면 마음 맞는 친근한 사람들과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가끔 같이 저녁도 해 먹고, 술 한잔 기울이며 수다도 떨고, 함께 나가서 놀 수도 있는. 그렇게 낯선 대도시 생활에 서로 활력이 되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플랏 메이트도 물론 플랏마다 다 제각각이고 그야말로 랜덤이긴 하지만, 나는 뷰잉을 다닐 때마다 어느 정도 플랏 메이트들의 나이대와 성별 및 성향을 물어봐서 입주 전에 그들에 대해 파악을 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처음에는 2-3명만 셰어 하는 플랏보다는 4-5명 정도 셰어 하는 플랏을 선호했다. 어느 정도 복작복작한 느낌이 나야 사람 냄새나고 정겨울 것 같다는 막연한 판타지 때문이었다. 한국인들이 모여사는 플랏도 있어서 원한다면 한국인 플랏 메이트들과 살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국적 역시 랜덤이다. 이 곳이 런던이라고 해서 플랏 메이트들이 다 영국인일 거라는 생각은 절대로 틀리다. 오히려 영국인 플랏 메이트를 만나는 게 더 드문 일 같다.


위의 내가 세운 지역, 가격, 집 형태의 기준에 모두 들어맞는 플랏을 발견하고 거의 입주를 결정하기 일보직전이었을 때 나는 한 광경을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부엌에 맥주캔이 한가득 쌓여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것을 이 집에 사는 플랏 메이트들은 서로 맥주를 나누어 마시며 재밌게 지내는 아이들이구나라고 해석해버렸고, 이 집에 살면 재밌겠다!!라는 단순한 생각에 입주를 마음먹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판단이었지만 결국은 신의 한 수였던 것이 분명하다. 귀중한 인연들을 이 집에서 만나게 되어 나의 런던 인생이 한순간에 바뀌어버렸으니.  


바로 이 광경. 알고보니 전에 살던 사람이 맥주회사에 다니던 사람이라 다 놓고 이사나간 것 뿐이었다. (London, 2016)


사실 플랏 메이트들과 공간을 공유하면서 사는 게 만만치가 않은 일이다. 주말에 옆 방의 알람 소리에 깰 때도 있고, 늦은 밤에 세탁기를 돌리는 누군가 덕분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청결에 대한 이해도가 다른 플랏 메이트가 있다면 그것만큼 지옥 같은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랏 메이트가 있다는 것은 내가 아플 때 차 한잔을 끓여다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보일러를 틀어놔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슈퍼에 갈 때마다 너 필요한 거 뭐 없어?라고 물어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애증의 존재들이랄까.ㅎㅎ 셰어 플랏에 산지도 벌써 1년, 이제는 나만의 공간이 절실하다는 생각에 셰어 하지 않는 독립적인 공간으로의 이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지난 1년 간의 생활에서 남들과 같이 살며 오히려 나만의 규칙이 더욱 뚜렷해진 느낌이 든다. 좋은 플랏 메이트를 만나는 것은 분명 큰 운이고 복이다. 그리고 내가 그 좋은 플랏 메이트가 되어주려 노력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갖은 눈물과 고통 끝에 가지게 된 북런던 작은 동네의 내 방 한 칸.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내 힘으로 만들어내 하나하나 애틋하지 않은 것이 없는 첫 독립공간. 들려오는 악센트만큼이나 다양한 인종, 다채로운 저마다의 배경과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도시, 런던.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반짝이는 기회들로 가득 차 있지만 이 곳은 딱 그만큼 치열하고 또 처절하다. 이 삭막한 도시 속에서도 언제든 문을 열고 들어가 따뜻하게 잠들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때로는 방 밖보다는 방 안에서 삶을 보고 인생을 느낀다.


뷰잉을 다니며 정리했던 리스트
집 앞이 공원이라 뷰가 너무 예쁘다. 우리 집은 아쉽게도 앞마당이 없지만 나는 이 공원을 우리 앞마당이라고 부른다.
꽃을 놓으면 한결 화사해진다.



-다음 글에서는 보다 가벼운 내용의  '런던의 직장인들은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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