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윤 Apr 25. 2016

혜화동, 그 아저씨

3월 어느 날의 일기

그 날은 공기가 유독 찼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는 코트 깃을 있는 대로 세운 후, 

차가워진 손을 주머니에 깊숙이 넣었다. 

자꾸만 자꾸만 발걸음이 빨라지는, 그런 날이었다.


그만큼이나 차가운 날에도,

부지런 떠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사람이 있다.


혜화역 4번 출구 붕어빵 아저씨.


아저씨는 늘 그곳에 있다. 

혜화동에 아주 오랜만에 찾아가도,

아저씨는 어제처럼 거기에 있다.

오늘처럼 내일도.

내일처럼 모레도.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붕어빵이

7개엔 1000원,15개엔 2000원. 

7개 사시면 한 개는 서비스로 드려요.

하얀 종이에 손으로 투박하게 써 내려간 글씨가 애틋하다.


그 추운 날에도, 언젠가 더워질 날에도

아저씨의 공간은 

사방이 채 모두 막히지 못한 작은 천막뿐.


추운 길거리 위에서 마주치는 붕어빵 아저씨는 

마치 사막 위의 오아시스,

혹은 땀을 뻘뻘 흘린 후 달려가게 되는 수돗가,

그것도 아니면 배가 잔뜩 고플 때 차려지는 엄마 밥상 같다.


오들오들 거리는 길 위의 사람들을 녹이는 대피처가 되기 위해

아저씨는 그렇게 한 면이 뚫린 천막 안, 추위 속에 있는다. 


그 날은 나도,

아저씨의 달콤한 향기가 나는 대피처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아유 아저씨 추우시겠다. 붕어빵 천 원어치만 주세요.”


“아이고 괜찮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붕어빵을 구워내는 아저씨의 손이 분주해진다. 

아저씨가 붕어빵을 반쯤 구워냈을 때 즈음,

아저씨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아저씨는 손이 너무 바빠서

핸드폰을 차마 들지 못했고,

이내 앳된 목소리가 그 작고 조금은 춥고, 조금은 따뜻한 천막 안을 가득 채우며 울려 퍼진다. 


“아빠~”


“아이고 우리 딸, 아빠 일하는데 왜 전화했어? 아빠 지금 바쁜데..”


“아빠 나 배고파!”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목소리.

한창 아빠에게 응석 부리고 싶은 귀여운 딸아이.


“우리 딸 배고프면 안 되는데..? 먹고 싶은 거 있어?”


아저씨 분주했던 손이 잠깐, 아주 잠깐 머뭇거린다.


“아빠~ 나 치킨하고 피자하고 먹고 싶어!”


휴, 역시 아이는 아이구나. 


“우리 딸 치킨하고 피자가 먹고 싶어? 그럼 얼른 시켜먹어야지~ 아빠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사줄게. 

그때 같이 먹자?”


아저씨 얼굴에 미소가 숨겨지지 않는다. 


“알았어. 아빠~ 끊어!”


아, 붕어빵이 다 구워졌다.

아저씨는 하얀색 봉투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갓 구워진 붕어빵을 담아서 나에게 건넸다. 


나는 괜시리 찡해져서는

붕어빵 7개가 아닌 8개가 든 그 하얀 봉투를 들고,

다시 길 위로 나선다.

발걸음이 좀처럼 빨라지지 않는다.

꽤나 천천히 걷는다.


그 날은 공기가 유독 따뜻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