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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창 Jan 23. 2019

공공의 창업지원, 창업생태계에 집중하자!

  참여정부 시절 창업 정책이 강조되기 시작하면서 여전히 창업은 정부가 발표하는 경제정책의 주요 화두로 등장한다.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민간 중심의 벤처생태계 혁신대책"을 보면, 창업의 양적 성장은 어느 정도 이루어냈으나, 질적 성장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창업생태계가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 창업생태계는 폐업률이 높고, M&A 등을 통한 원활한 회수시장이 발달하지 못하였으며, 능력 있고 우수한 젊은 창업가의 유입 부족 등 기업가정신이 다소 부족하고, 실패에 대해 관용적이지 않고 창업을 기피하는 사회 분위기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공공에서도 창업지원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필자가 경험한(지자체 창업지원의 경우) 바에 따르면, 예비창업자나 창업기업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창업자금(보조금)을 제공하는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며, 그간 창업의 양적 증가를 위해 창업 인프라를 확산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어 온 경향이 있다. 




  일부에 불과한 얘기겠지만 우연히 방문했던 어느 도시의 창업보육센터 사례를 들어보자. 기존의 공공 용도의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으로 대중교통이 거의 없어 차량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기존 건물을 창업공간으로 재탄생시켜 저렴한 비용으로 사무실을 제공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예비창업자가 창업기업에게 그리 매력적인 곳은 아닌 듯 보였다. 실제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유동인구가 거의 없어 활력이 전혀 없는, 죽은 공간처럼 보였다. 창업기업이 모여 있는 공간은 예비창업자와 창업가는 물론, 투자자, 멘토, 전문가 등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활력 넘치는 공간이어야 한다. 


  공공이 지원하는 일부 창업공간은 양적인 정책목표를 달성하거나, 창업을 확산시키기 위해 입지조건이 다소 열악한 곳에 조성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우수한 창업가를 유입시키기 어렵고, 창업기업을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투자자, 멘토와의 네트워킹에도 많은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우리나라의 첨단기업 클러스터로 주목받고 있는 판교에서도 많은 공공기관이 창업공간을 운영하고 있지만, 엑셀러레이터, 투자자 등 창업을 지원하는 전문가들에게 판교가 그리 매력적인 곳이 아니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필자는 '판교'가 나름 입지적으로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있어(판교와 강남과의 거리 12km, 신분당선으로 강남과 연결), 그 이유를 물으니 본인과 판교 간에 심리적인 거리가 있다고 한다. 물론 필자가 만난 전문가들이 주로 서울(강남)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시기에 판교를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여전히 판교는 그들에게 먼 곳에 불과하였고, 서울에 창업기업들이 집중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판교로는 가지 않게 된다는 답변이었다. 그리고 판교의 창업공간은 창업기업들과 자유롭게 왕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코워킹스페이스가 부족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비교적 최근에 조성한 대도시 중심부에 있는 창업공간으로 지방이전을 한 공공기관이 사용하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창업보육 공간이다. 다수의 노선이 교차하는 환승 지하철역이 도보 5분 거리에 있고, 버스 등 그 외의 교통 편의성도 우수하다. 반경 수 km 내 우수한 대학교가 다수 있어 젊은 학생 창업자들의 유입이나 대학교와의 기술 교류에서도 장점을 가지고 있다. 건물 1층의 매우 넓은 공간을 코워킹스페이스로 조성하여 그 건물에 입주한 창업가와 외부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회의도 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도 잘 갖추어져 있어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향후 우수한 창업공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였던 곳이었다. 




  한때 창업공간을 조성하는데 멋진 인테리어가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물론 이러한 인테리어는 창업기업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거나, 쾌적한 근무환경을 제공하는 역할도 하지만, 혹자는 그러한 공간 조성에 들어가는 인테리어 비용을 아껴 창업기업에 투자하는데 낫다고도 한다. 창업공간을 조성하는데 공간을 디자인하고 외관을 꾸미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입지라고 생각한다. 창업기업에 필요한 다양한 자원, 즉 기술과 정보, 사람(인력과 전문가), 자금이 쉽게 유입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우수한 창업기업은 단순히 사무실을 제공하고 일부의 창업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최근 글로벌 창업의 화두는 우수한 창업생태계의 조성이며, 실리콘밸리, 뉴욕, 베이징 등 대표적인 창업도시는 기업가정신이 바탕이 되어 성공신화는 빨리 확산되고 실패는 용인되는 창업문화가 갖추어진, 그리고 금융과 시장, 인력, 전문서비스 접근성이 우수하고, 창업 친화적인 제도와 R&D 펀드 등 정부의 재정지원 면에서 우수한 곳이다. 




  향후 공공의 창업정책은 개별 기업을 지원하기보다는 창업생태계 조성에 역점을 두어야 하며, 공공은 민간의 영역에서 창업지원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민간영역과 협력해야 한다. 민간의 창업지원 시스템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공공이 해야 할 일(to do list), 하지 말아야 할 일(not to do list)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를 포함해서 많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은 민간과 공공의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중소기업 지원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직접 수행하려고 한다. 공공은 결국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는 속성을 인정하고, 민간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은 철저하게 민간에 맡기거나, 민간이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하는 게 중요하다. 가령, 창업지원의 경우, 장기적 관점에서 생태계를 튼튼히 갖추는 게 필요하며 단기적으로 많은 창업이 일어나게끔 하는 것보다 우수한 인력이 창업으로 유입되고, 창업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자양분(기술, 자금)이 쉼 없이 흐르고,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당장의 창업공간보다는 말이다. 공공은 창업기업과 다양한 주체들과의 네트워크, 창업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국제협력 인프라, 대학․연구소를 통한 끊임없는 기술 유입 등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가 규제로 인해 가로막히지 않도록 적극적인 규제개선도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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