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반(白飯)

역지사지의 미학(米學)

by 배동일


마라톤 오전회의가 끝났다.

산더미 같이 나온 숙제들이 어깨를 짓누르지만

그럼에도 배꼽시계는 돌아간다.


오늘 뭐 먹지?

왠지 그런 날이 있다. 집밥 생각나는.

그래 백반 가자.


강남은 임대료가 비싼 지역.

그래서 그런지 백반집이 거의 없다.

한두 가지 메인 디쉬에 반찬 서너 가지 내놓는

기사식당들이 있지만 정통 백반이라 보기에는.


여러 가지 밑반찬을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

손님 입맛에 따라 선택받지 못하고

남겨지는 엄청난 양의 음식물쓰레기,

아마도 이런 이유로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백반을 파는 식당.

손 빠른 주방 아주머니의 억척스러움일까?

아니면 박리다매를 노린 차별화 전략일까?


오전회의 내용이 머릿속에 맴돌면서 목이 탄다.

물 한 모금 마시는데 이모님이 백반을 내어오셨다.


반찬이 또 바뀌었네.

젓가락이 바쁘게 움직인다.

여러 가지 반찬을 먹다 보니 머리가 가벼워졌다.

짓눌렸던 어깨도 한결 편안하다.


혹시...

백반집을 고집스럽게 하시는 이유가

회색빛 오피스가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아들딸 같은 직장인들의 고충과 번뇌를

집밥 한 끼로 조금이나마 덜어주시려는 것 아닐까?


고개를 들어 주방을 한번 쳐다본다.

이모님의 작은 어깨가 든든해 보인다.


한 번도 젓가락을 보내지 않았던

반찬접시로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그래 생각해서 만들어 주신 건데 버릴 수 없지.


한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았지만

주방에 계신 이모님과 나는

그날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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