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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빈 Mar 14. 2024

블랙빈에게 쓰다

36 다른 무엇보다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는 당신이 좋은 사람이길 바란다. 만약 당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픽션을 쓰라.(p213)


낸시는 소설 주인공들 중에서 자신이 못마땅하게 생각한 유일한 주인공은 올리버 키터리지였다고 했다. 그러나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야 왜 그녀가 그렇게 성격이 고약했는지를 알게 되었고 그 이해로 그녀를 공감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논픽션의 글이 아니라 픽션의 글로 못된 사람이 새로운 나로 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픽션의 글로 알려 달라고 했다.


난감했다. 여자는 한 번도 픽션의 글을 써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올해부터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의 글을 쓰기 위한 준비 단계의 첫 발걸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 필사를 하고 있다. 매일 꾸준히 스스로 정해놓은 분량을 필사하고, 인문학이나 자기 계발서보다 문학작품에 더 비중을 두고 딥리딩을 하면서 픽션의 첫 문장을 쓰고 그 문장으로 자기가 구상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한 작가들을 전보다 더 존중하고 공경하게 되었다.


작가들을 바라보는 시각의 폭이 넓어진 여자는 언제까지 준비를 하고 언제부터 본격적인 픽션의 글을 쓸지 구체적인 계획을 정하지 못했다. 솔직히 쓸 엄두도 자신도 없는 것이다. 하고 싶다면 그래서 쓰고 싶다면 쓰기 위해 필사가 아니라 배움을 해야 함을 그녀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시작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행동을 하는 것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남들은 몰라도 여자 스스로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해서 그 시작을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다는 것을 핑계 삼아 숨을 구멍만 찾고 있다.


늘 그랬다. 여자는 지금의 자리가 아니라 새로운 곳으로 가기 위해 문 앞에 서게 될 때마다 그 문이 새로운 곳으로 자신을 안내하는 문이 아니라 벽으로 느껴졌다. 늘 무섭고 두려웠다. 자신 안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논픽션의 글을 써가며 문이 아니라 벽을 느끼는 자신에 대해 알아내고 싶었으나 알 수 없었다. 남들의 시선과 그 시선이 늘 평가의 잣대로 여겨지는 이유를 여자는 결국 찾지 못했다. 아니 찾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약한 이유가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을 겁내하고, 또 그 마음을 만나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 기쁘고, 뿌듯하고, 홀가분하고, 감격스럽고, 유쾌해야 함에도 여자는 그 길을 나서는 것이 신경 쓰이고, 긴장되고, 진땀 나고, 초조하고, 막막하고, 곤혹스럽다. 그렇기에 논픽션의 글보다 픽션의 글로 자신을 포장하고 위장하려고 글쓰기의 방향을 픽션으로 전환하려는 마음을 가진 건지도 모른다.


이런 자신을 논픽션의 글로 더 이상 꺼내놓기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을 쓰고 싶은 여자는 픽션의 글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자신 안에 있는 용기를 하나씩 끌어 모으고 있는 중이다. 마음속 돼지 저금통에 하나씩 그 용기를 저금하듯 채우다 보면 언젠가는 SG 워너비의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의 가사말처럼 그렇게 수많은 별을 헤는 밤이 지나고 비겁했던 여자의 변명이 용기로 바뀌어 자신의 이야기를 우리의 얘기로 만들어 쌓으면 쌓여있는 그 이야기의 먼지를 털어내고 읽어주는 누군가와 만나는 그날이 올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서툴렀던 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여자의 시간을 담아낸 이야기를 누군가가 읽으며 웃어주길, 글이 희망이 되고 삶이 된 여자의 이야기가 그렇게 세상에 나오길 여자는 오늘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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