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이제 성공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나는 꼴찌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그래도 성공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환희를 느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내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지라도 내가 느낀 승자의 승리감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었다!(p224)
여자는 다른 어떤 사람의 기준으로는 승리라고 할 수는 없으나, 자신의 기준으로 승리였던 경험이 무엇이 있었나를 살펴보라는 낸시의 말에 지난 시간이 담겨있는 추억의 책장을 뒤졌다.
아무리 살펴봐도 반평생 넘게 살아온 삶에서 승리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찾기가 어렵다. 사실 낸시의 말대로 글을 쓰기 위해 하는 작업이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다. 아무리 뒤져봐도 승자의 승리감을 만끽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미적지근한 삶이었고 평탄한 삶이었다. 주어진 삶에서 그리고 살아야 할 삶에서 죽기 살기로 달리고 뛰었던 기억이 없다.
대신 뛰지 않고 걸었음에도 다리에 힘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길이 울퉁불퉁했었는지 갱년기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던 기억은 아주 또렷이 남아 있다. 다행히 몸과 마음을 지탱하는 뼈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찰과상을 심하게 입어 여기저기 찢어지고 이곳저곳이 긁히고 군데군데 멍이 들었다. 자신에게 걸었던 기대와 믿음이 무너진 일로 고꾸라지듯 넘어지면서 절망의 비애를 맛보았다. 비감하고 비통했다.
마음에 얼룩이 지고 상처가 생기고 구멍이 나서 누더기가 되어도 모른척했다. 상처 난 마음을 덮어놓고 감추고 숨겼다. 그러다 덮어놓은 마음이 해지고 벌어지고 뜯어지면서 몸이 아팠다. 회오리바람처럼 불어오는 악재를 견디며 이겨내느라 온 힘을 쏟았다.
여자는 양귀자의 『모순』의 주인공인 안진진이 스물다섯 살에 알았던 깨달음-나의 인생에 있어 ’나‘는 당연히 행복해야 할 존재이고, ’나‘라는 개체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나에게 소중한 것이며,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쉰다섯 살을 넘기고야 알았다. 그리고 또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책으로 배우면서 자신을 넘어뜨린 돌부리 같은 존재인 갱년기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자신에게 상처를 준 갱년기를 수용하고 극복하는 시간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가는 여자는 돌부리와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다. 남들 눈에 거창한 승리는 아니지만 여자는 자신을 찾아왔던 불청객인 갱년기 덕분에 자신만의 ‘원씽 one think'을 찾았고, 그것으로 읽고 쓰는 유희를 얻었다.
세상의 모든 고난을 뚫을 수 있는 창과 세상의 모든 고난을 막아내는 방패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삶은 모순의 연속이다. 나쁜 일이 모두 다 나쁘지도 않고 또 좋은 일이 전부 다 좋은 것만은 아닌 삶에서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모순을 가지고 승리의 환성을 올리는 것이 바로 일상의 삶임을 이제 여자는 안다. 여전히 어떤 때 창을 꺼내고 어떤 때 방패를 꺼내야 할지 헷갈리지만 그래도 꺼내야 할 창과 방패를 가진 여자는 고난을 이겨내는 승리의 무기를 가진 것으로 만족한다. 여자의 몸의 상처가 자신을 드러내는 상징이 된 것으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