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랙빈 Apr 18. 2024

 블랙빈에게 쓰다

41 시각화

물론 시각화를 한다고 책이 저절로 써지지는 않는다. 그 부분만큼은 당신이 직접 해야 한다. 미안하지만 우주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는 있다. (p226)


여자는 자기 전에 원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시간을 30일 동안 매일 밤 가져보라는 낸시의 권유는 해봄직하다고 생각했다.


하여 바로 그 시각화를 해보면서 자신이 출간할 책의 전체적인 구성과 그 속에 들어가야 할 수백 개의 문장과 단어를 만들고 그 문장을 적절하게 배열해서 글을 쓰는 것보다 자신이 쓸 책의 제목을 생각하고 표지를 구상하는 일이 여자를 조금 행복하게 만들었다.


물론 시각화를 한다고 책이 저절로 써지지 않는다는 것과 그저 시각화로 책을 구체화시켜 보는 것으로 책이 완성되는 일이 아님을 여자는 누구보다 잘 안다.


단독 출간이 아니라 공동저자로 책을 출간하면서 한 권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 얼마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체험한 여자는 회갑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희망을 내려놓았다. 그 내려놓음이 책을 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우게 만들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단독 출간하는 책은 이제 실체가 아닌 시각화로만 존재하는 허구의 허상이다.


아쉽거나 안타깝지 않다. 여자는 글을 쓰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그 시간으로 충분히 만족스럽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책을 소유하는 것보다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의 흔적과 그 흔적으로 남아 있는 글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으로 여자는 행복하다. 해서 자신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지 않아도 마음에 허함이 없다.


고전의 작가들과 현대의 작가들의 삶이 투영된 문학인 소설을 읽으며 여자는 오늘도 배운다. 어렵고 힘들게 글을 써왔던 그들의 기나긴 시간을 통해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중한지, 가뭇없이 속절없이 보내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그리고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그들이 지켜왔던 것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를 보고 배워간다.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에서 헤매지 않고 자신을 찾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자신을 칭찬한다. 남들 눈에 잘되고 있는 게 아니라 해도 여자는 상관없다. 용기를 낸 글쓰기로 자신을 헤집지 않고 자신 안의 자신을 찾아가는 이 순간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작가의 이전글 블랙빈에게 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