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전부 쓰라
당신의 이야기는 당신에게서 시작하지 않았고 당신과 함께 끝나지도 않을 것이다. 당신은 그 이야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p260 )
나의 쓰기는 온전히 쓰는 것 그 자체로 쓰기의 본질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알리기 위해 글을 쓰기보다 나를 알기 위해 글을 쓴다. 일상의 시간을 보내면서 사람들과 그 사람들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들로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일렁이고 출렁이는지. 이 일렁임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출렁거리며 어디쯤 가고 있는지. 멈추어야 하는지 아니면 계속 흘러가게 두어야 하는지. 왜 그런 감정들이 나를 흔들어 힘들게 하는지. 그래서 이제는 그 감정이 해소가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잃고 얻었는지 알기 위해 글을 쓴다.
책 읽기도 비슷하다. 타인을 이해하기보다는 나를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책 속의 문장과 단어로, 배경이 되는 장소와 등장인물들로 몰랐던 나를 발견하고 또 알았던 나를 깊이 만나고 그 만남으로 잘못된 나를 반성한다.
이렇게 나를 포장하며 글을 쓰고 있으니 ‘나’라는 사람이 꽤 철학적 사유를 가진 괜찮은 사람 같지만 실상 나는 쓰기와 읽기로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쓰기와 읽기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시간을 보내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관념적 사고와 피상적 사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갈지자로 걷고 있는 소비형 인간일 뿐이다.
나이 듦에 넓어지고 깊어져서 여유로워질 줄 알았던 나의 사고는 여전히 급하고 좁고 얕고 편협하다. 꼰대가 되고 싶지 않지만 어느새 꼰대가 되었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해줘야 알아듣는 사람이고,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는 사람으로 참고 기다리기보다는 안 참고 먼저 가야 하는 관료적 사람이다. 나는 발효되어 삭히고 익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식되어 녹슬어 가는 중이다.
이렇게 부식되어 가는 나에 대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쓰면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의 속물이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사실 빠뜨리고 대충 써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내가 세속적이고 속된 인물임을 안다.
달라지고 싶었다. 달라짐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나는 달라지지 못했다. 남들 보기에 생각하고 사고해서 사유하는 것으로 저속 성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나는 생각했던 대로 생각해서 행동하는 멈춰 서 있는 사람으로,
빛 좋은 개살구라도 좋으니 남들 보기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겉포장지만 명품이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속물근성을 가진 빈 수레의 중년의 여자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슬비가 내리는 날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카페에 앉아 패드를 펼쳐놓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니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여자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일주일에 하나씩 올리는 브런치의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해서 헤매고 있는 자존감이 바닥인 허당의 아줌마일 뿐이다.
척하지 않고 고백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