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빈에게 쓰다 52

52 내 기억이 흐릿하다면?

by 블랙빈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그대로 내버려 둬라. 당신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하라. 다시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이다.(p266)


작가는 이번에는 ‘우리 집 저녁식사는...’이라는 주제로 나의 삶을 되짚어 보라고 한다.


지나온 내 삶을 ‘우리 집 저녁식사는...’이라는 주제로 되짚어보니,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온기를 나누며, 삶을 지탱할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밥상에 대한 첫 기억은 1974년 봄, 막내가 태어나는 날 아침,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해 아빠가 끓여준 라면이다. 그 라면이 무슨 라면이었는지 언니와 동생과 함께 먹으며 무슨 얘기를 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아빠가 끓여 주었던 매운 라면은 맛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또렷하게 남아있다.


부산 영도 시절, 엄마가 차려주시는 밥상 위엔 밥보다 맛있는 것들이 많았다. 밥 솥에 함께 쪄낸 포슬포슬한 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밥 대신 만들어 주었던 달큼한 술빵과 수제비... 가끔 특식으로 먹던 라면. 어떤 반찬을 주로 먹었는지에 대한 기억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좁은 방 안을 채웠던 소박하지만 엄마의 정성이 담긴 따스했던 밥상이었다.


본격적인 ‘식탁의 기억’은 1977년 광안리로 이사를 오면서부터다. 평일 저녁 8시는 아빠의 퇴근에 맞춘 우리 집만의 약속된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딸만 넷인 집안의 식탁은 늘 시끌벅적했고 소란스러웠다.


학교에서의 소동, 친구와의 수다, 그날의 기분까지... 퇴근 후 지친 아빠와 살림에 고단했던 엄마에게 네 딸의 재잘거림은 기분 좋은 소음이기보다 버거운 소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만 이야기하고 밥 좀 먹자"는 아빠의 핀잔은 식사 시간의 단골 추임새였지만, 우리에게 그 식탁은 하루의 소회를 마음껏 쏟아내는 대나무숲이었다.


저녁 식사가 일상의 '소란'이었다면, 일요일 아침 식탁은 조금의 '특별함'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 무렵부터였을까. 육류보다 생선을 좋아하셨던 아빠는 일요일 새벽 어시장에서 횟감을 사 오셨다. 아빠가 직접 뜬 회가 아침 상에 올랐다. 혹여나 날것의 비린맛을 꺼려했던 나를 걱정하던 엄마는 손수 담근 포도주를 소주잔에 '병아리 눈물'만큼 따라주셨다. 그것이 나의 첫 알코올의 기억이다. 회보다 달콤했던 그 포도주 한 모금의 추억이 나로 하여금 알싸한 알코올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수십 년 흐른 지금도 매주 일요일에 친정을 가면 회를 먹는다. 이제는 아빠가 직접 뜬 회가 아닌 단골집에서 떠놓은 회를 주문해서 먹는다. 식탁 위에 차려진 회에 절대 빠지지 않는 술 한 잔은 이제 병아리 눈물만큼 이 아니라 꽉 채운 소주 한 잔이 되었고, 그 한 잔과 함께 먹는 한 점의 회는 어떤 고량진미보다 맛있다.


별스러울 것 없는 반찬이 차려진 소소한 밥상이지만 식구가 늘어난 친정 집 주말 식사 시간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특별하다. 이 특별함과 소란스러움이 오래 유지되기를 소망하고, 주말마다 온기 가득한 식탁에서 마주 앉아 따스한 밥을 즐겁게 먹는 시간이 부모님께도 좋은 기억으로 오래오래 남아있길 희망한다.


가족들이 모두 다 함께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먹는 밥, 그 밥은 단순한 밥이 아닌 이 하루를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비타민이고 힘겨운 세상을 버티며 살게 만드는 보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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