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고통스러운 부분을 건너뛸 수는 없다
나는 우리가 슬픔을 몸에 쌓아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는 것과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p271) 고통스러운 부분을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p275)
글쓰기를 통해 나에게 일어난 일들, 트라우마와 상처, 그리고 작은 ‘살인’ 같은 기억들을 아름다운 것으로 바꿀 수(p270)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구간을 건너뛰고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작가의 말처럼 아픔이나 슬픔을 몸에 담아두고 쌓아두는 것으로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 드러내는 것보다 쉽다. 나 역시 그랬다.
마음이 아파서 몸이 비명을 지르던 시간들을 모른척했다. 그렇게 꾹꾹 눌러 담으면 아무도 모를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마음을 이기지 못한 몸이 무너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고통은 감춘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말로 내뱉고 글로 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해야 한다. 내 몸인데도 내 몸을 몰랐던 것처럼, 내 마음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속살이 어떤지 알 길이 없다.
한때는 그저 나이가 들어 시들어가는 것이 순리라 생각했다. 나를 소모하며 우는소리 내지 않고 버티는 것이 미덕이라 여겼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끝까지 참아내며 나를 지켰다. 하지만 '참는 것'과 '돌보는 것'은 달랐다. 내 마음도 내가 열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내가 덮어둔 상처는 꺼내어 보여주지 않으면 누구도 알아볼 수도, 알아줄 수도 없다.
남편에게 처음으로 아프다고, 슬프다고 말했다. 내 안의 그림자를 끄집어내는 여정에 기꺼이 동행해 준 남편 덕분에 나는 나를 찾아가는 길을 찾았고 그 길을 남편과 손잡고 걸어가고 있다.
누구나 완벽할 수 없다. 힘든 하루와 고된 역경을 견디게 하는 힘은 결코 혼자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나를 알아야 하고, 나를 알기 위해서는 자주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그 시선 끝에 걸린 감정들을 입 밖으로 내뱉어야 한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아프면 아프다. 슬프면 슬프다. 사랑하면 사랑한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고마우면 고맙다.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이라도 노력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 곁의 소중한 사람에게 내 마음의 언어를 건네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나의 마음을 돌보고 내 몸을 챙기는 시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