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빈에게 쓰다 54

54 때로는 의식의 전환을 위해 외부의 이야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by 블랙빈

이것은 선물이다. 나는 이것이 선물이라는 것을 미처 알아차라지 못했다.(p282)


살아가다 보면 의식을 전환을 위해 외부의 이야기와 타인의 삶을 내 삶에 투영해 보는 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들을 무시한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이라 방심하거나 설령 닥쳐오더라도 냉혹한 현실 앞에 지혜롭게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자만한다.


하지만 막상 어떤 역경의 순간이 눈앞에 닥치고, 고난의 시간이 내 앞에 덜컥 다가오면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막연한 시나리오가 산산이 부서진다. 지식으로 알고 있던 깨달음 보다 막막한 현실 앞에서 다가온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비관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누구나 그렇다. 부단한 시련을 만나고 그 길 위에서 겪는 시련으로 실패를 맛본다. 육체의 고통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서 마음의 병으로 깊게 뿌리내리기도 하고, 실패의 여파가 일상의 삶을 흔들어 좌절의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살아갈 방법은 절대 없다.


삶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실패했다는 자괴감에 일어설 용기마저 상실하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비바람에 쓰러져있는 그 순간 마음 밑바닥에서 포기하지 않고 넘어지면 일어나고, 일어서면 다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지만 나를 고쳐 쓰고 싶어진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발버둥을 치다 보면 넘어진 채 엎드려 절망에 빠져 있는 내가 아니라 다시 하늘을 보기 위해 몸을 뒤집으려는 나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몸을 뒤집어 힘겹게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비를 맞고 있으면 나에게만 내리던 비가 어느새 그치고 바람이 잦아드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조금씩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 보이고, 구름이 보이고, 달이 보이고, 별이 보인다. 엎드려 있으면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고, 보이는 것들이 나를 다시 일어서고 싶게 만든다. 세상이 격렬히 나만 미워하는 게 아니라면 최소한 지금 이 순간 넘어져 엎어진 나를 다시 밟고 지나가지는 않으리라는 믿음, 그 작은 소망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좌절의 시간, 사방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순간 손내밀 사람이 아무도 없을 바로 그 순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들기만 하면 보이는 바로 그곳엔 그토록 기다려온 바로 그 선물, 가장 힘든 순간에도 내 곁을 지키고 있던 선물인 내 안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 안의 나, 내 발목을 잡고 있는 내 안의 검은 그림자가 아니라 내 손목을 잡고 있는 내 안의 하얀 그림자를 선물로 만나게 된다. 나는 지금 선물로 받은 하얀 그림자와 함께 글쓰기로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검은 그림자를 조금씩 떼어내고 있는 중이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지만 내가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찾으려 해야 보이고, 보여야 찾는다. 내 발목을 잡고 있는 내 안의 검은 그림자가 아니라 내 손목을 잡고 있는 내 안의 하얀 그림자를 잡고 매일 선물로 받는 오늘 이 하루 속에서 내 행복은 내가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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