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삶을 옹호하지 않고 뒤 돌아보기

2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버리기

by 블랙빈


코로나와 함께 갱년기가 오고 갱년기와 함께 우울증이 왔다. 어느 것이 먼저였고 뒤였는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이 화성에서 온 남편이 집에 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는지 아니면 금성에서 온 아내인 내가 집에서 나가지 않으면서부터였는지 기억이 없다.


살아보니 그랬다. 어떤 일들은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데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나는 일이 있고, 무슨 일은 기억하고 싶은데 흐릿해서 떠오르지가 않을 때가 있다. 휘청거리며 난해하게 지나갔던 시간은 더더욱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런저런 이유로 갱년기를 앓기 시작했던 그 시기의 시간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갔는지 가물가물하다.


뭉텅거려서 그냥 짜증 나게 힘들었고 다시 생각하고 싶지가 않을 뿐이다. 그럼에도 가끔 그 시간이 떠오르면 이제는 살만하다고 느낀다. 삶은 여전히 어렵지만 닥쳐오는 사건들을 미리 가불 하지 않고 눈앞의 것만을 해결하며 사는 법을 택하고부터 조금은 가벼워졌다. 나 스스로를 챙기기에도 버거워 숨어있기 바빴는데 이제 조금씩 주위가 보인다. 이렇게 말해 놓고 돌아서는 순간 다시 가라앉을까 지금도 조마조마하다.


‘죽기 위해 살아가는 현재의 시간이 힘들다.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애처로웠다. 견디고 버텨야 하는 시간들이 첩첩이 쌓여 있는 것이 무서웠고 매달릴 것이 없는 상황들의 무료함이 버거웠다. 측은했다. 갱년기에 시달리고 우울증에 밀려가며 어기적거리며 사는 삶은 삶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살았다. 책을 붙들고 아무 말이나 쓰면서 하루 한 끼를 챙기며 버텼다. 생겨나고 또 생겨나는 불안을 잠재우며 시간을 버렸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살고 있다. 하루 두 끼를 먹고 가끔은 세끼를 다 챙겨 먹는다. 잠들어 있는 열정이 아직 깨어나지는 않았지만 가끔 일어날 땐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도 가고 이곳저곳을 나가 돌아다니며 먹고 마신다. 내 안의 소리를 다 알아듣지 못하고 있지만 내뱉는 말에 대꾸를 한다. ‘나는 할 수 있다’라고 다짐을 하며 마음을 다독인다. 여전히 가끔은 내 마음이 나도 모르는 말을 할 때도 있지만 빈도가 줄어들고 있고,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던 갱년기 우울증을 버리며 극복하고 있다.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고 좋기만 한 관계는 가짜고, 아무런 사건도 생기지 않은 무탈한 일상이 행복은 아니었다.’라고 『올드걸의 시집』에서 은유님이 말했다.


갱년기 우울증으로 너무 큰 상처를 입었지만 그 상처로 나를 다시 보는 시간을 가졌고, 그 시간 동안 생긴 일들로 무탈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지 체험했다. 뭘 더 바라겠는가. 일상의 행복을 다시 발견하고 있는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서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땅만 바라보며 걷지 않고 앞을 보고 걷고, 일상의 소소함을 글로 적고, 책으로 사유한 것을 나누고 그것들로 내 존재를 인식하면서 지내는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신해욱


​누군가의 꿈속에서 나는 매일 죽는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있는

얼음의 공포

물고기 알처럼 섬세하게

움직이는 이야기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하지 못한다

몇 번씩 얼굴을 바꾸며

내가 속한 시간과

나를 벗어난 시간을

생각한다

누군가의 꿈을 대신 꾸며

누군가의 웃음을

대신 웃으며

나는 낯선 공기이거나

때로는 실물에 대한 기억

나는 피를 흘리고

나는 인간이 되어가는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