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드우먼의 리딩과 라이팅
브런치 작가 신청을 위한 자기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갑자기 막막했다. 엄마와 아빠 그늘에서 아이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숙녀로 자라 남편을 만나 아내와 엄마가 되어 주부의 삶을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주부다.
내 손을 필요로 했던 아들은 청년이 되었고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던 남편은 퇴직을 해서 나와 같은 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한 집에 주부가 둘이 되면서 부딪히지 않아도 되는 일로 부딪히고, 별 말이 아닌 말에 다투는 사이가 되었다.
결혼하고 32년을 함께 살면서 부부는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해결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아들을 키우며 하는 말들이 대화라고 생각했다. 집에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동안 서로에게 했던 말들은 대화가 아니라 일방통행의 권유 같은 지시였고 부탁 같은 명령이었다.
해보지 않은 대화를 하느라 또 싸웠다. 싸우면서 나는 나에게 닥친 갱년기를 누그러뜨려야 했고, 우울증으로 엎어진 마음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불안해서 짜증이 났다.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각자의 언어만을 고집했고,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법을 몰라 화만 냈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 자신의 말만 했다. 말을 하고 또 하며 길고 긴 날을 보내고 나서야 화가 가라앉고 싸움이 줄었다. 서로를 향해 세웠던 벽이 다시 서로를 위한 방패막이되었다.
벽이 다시 방패막이되는 동안 넘어졌던 나를 책으로 일으키며 혼자 보내는 시간의 힘도 길렀다. 그 힘으로 내 안에 쌓아두었던 것들과 책을 통해 사유하고 수긍한 인식들을 글쓰기로 풀면서 다독였다.
사고는 느닺없이 찾아온다. 나에게 갱년기가 그랬고 우울증이 그랬다. 삶에서 어떤 일들은 그렇게 사고처럼 다가온다. 글쓰기가, 책 읽기가 사고당한 몸과 마음을 다 치유해주지는 않지만 신호등이 되어 주었다. 빨간 불, 주황 불, 초록 불이 적절하게 켜지고 꺼지면서 남편과 대화를 하는 나를 조절해 준다. 여전히 교차로에 서면 당황해 허둥대지만 신호등의 불빛이 안전지대가 되어 우선 멈춤을 하게 만든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우울증에 넘어지고 갱년기로 엎어진다.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겨우 바닥에서 일어났다. 일정한 속도로 정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맞닥뜨리는 불만과 불안을 나만의 언어로 하나씩 옮겨 적고 있는 중이다. 내 삶 속의 나를 잊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일어나 몸을 바로 세우고 용기 내어 이제 막 브런치의 문을 열었다.
나는 평범한 ‘올드우먼’인 주부다. 은유 작가는 ‘올드걸’의 정의를 ‘돈이나 권력, 자식을 삶의 주된 동기로 삼지 않고 본래적 자아를 동력으로 살아가는 존재, 늘 느끼고 회의하고 배우는 '감수성 주체'’라고 했다. 나는 은유의 ‘올드걸’과는 차별화된 '올드우먼’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다. ‘책을 주동기 삼고 글쓰기를 보조 동력으로 삼아 본래의 자아를 찾아가는 존재, 가끔 느끼고 회의하고 배우는 ‘이성의 주체’‘로 ‘올드우먼’인 나를 정의하고 이제 막 문을 연 브런치에 <사유의 공간>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혼자 말이 아닌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올드우먼의 리딩과 라이팅’을 하고자 한다.
삶을 옹호하지 않고 뒤돌아보기를 시작으로 삶의 비밀을 비우고 덜어내어, 다시 삶을 채우며 일어서기를 하는 시간들을 장을 담그듯 담가서 화끈하게 살기로 작정한 2023년 나를 억압했던 것들과 압박했던 것들을 솔직하게 버리며 내 삶을 옹호하지 않고 뒤돌아보기부터 시작한다. 화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