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삶을 옹호하지 않고 뒤 돌아보기

3 올드우먼의 글쓰기

by 블랙빈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태어나서부터 1991년 9월에 결혼하기 전까지 부산을 떠난 적이 없다.


부산 Y구에서 태어나 살다가 1997년 초등학교 4학년 때 M구로 이사를 했다. 뒤로는 황령산이, 앞으로는 광안리 바다가 보이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생활하면서 우리 집 대문 바로 앞에 있던 5층짜리 연립맨션에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한 공간의 맨션에서의 생활보다 그 맨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던 놀이터의 놀이기구들을 자유롭게 마음껏 타고 놀고 싶었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다. 마음이 단단하지 않아서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싶었고,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다. 어린 시절의 무의식적인 인상에 의해 가치관이 결정된다던 어느 평전 작가의 말처럼 그 무의식이 나를 나에게는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동경하는 어린이가 되게 했다. 중학교 3학년 사춘기를 지나면서 비로소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의 좋음을 좋다고 인식하게 되었고, 좋다는 인식의 판단 기준이 내 안에 바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그때부터 맨션의 놀이터가 아니라 우리 집의 소박한 정원의 꽃과 나무가 보였다. 봄을 알리며 피어나는 목련과 대문 입구의 수선화 그리고 한 켠의 텃밭과 오월의 장미, 가을 감나무와 사계절 내내 푸르렀던 향나무로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문 안의 것들이 주는 즐거움에 만족하며 생활했다. 이층 집의 사계절이 좋았다. 그렇게 가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해야 함을 체험으로 알았다. ​


글도 그래야 한다. 남의 글을 부러워하지 말고 내가 디딘 삶에 근거해서 써야 한다. 몸으로 실감한 진실한 표현인지 설익은 개념으로 자기를 겉꾸미고 남의 삶을 끌어다가 왜곡해서 자기 편의대로 가공하는 수단처럼 사용해서 쓴 글인지 스스로에게 물어가며 써야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며 단시간 나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글쓰기는 행했던 일들에 대한 되새김질이다. 다시 보면서 내려놓거나 벗어 버리거나 혹은 흘려보낸다.


글쓰기는 힘이 있다. 쓰는 사람 스스로를 성숙하게 하고 물렁거리는 내면을 탄탄하게 만들어 준다. 복작거리는 쓸데없는 것들을 덜어내고, 있어야 할 것들과 놓쳐 버렸던 것들을 다시 메꿔 준다. 그렇게 잃어가는 자신을 채우고, 잊어가는 스스로를 찾게 만든다.


거창한 글쓰기가 아니다. 짧은 단문의 몇 문장으로, 함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시로 어린 시절 썼던 일기처럼 오늘 하루,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과 쌓여있는 감정을 적어 내려간다. 그렇게 써 내려간 것들이 시간이 되면 차려내는 밥상처럼 좋아하는 반찬으로 채워질 때도 있고, 몸에는 좋아도 입에는 쓴 반찬일 수도 있고, 몸에도 좋고 입에도 맞는 반찬일 때도 있다. 어떤 밥상이든 차려서 먹으면 몸이 튼튼해지는 것처럼 글도 적어가다 보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하루 세끼 밥상 만으로 안될 때도 있다. 마음이 허전하거나 기쁠 때 기호식품인 차나 술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글도 내 안의 것만으로 안 될 때가 있다. 우리가 살면서 혼자 살 수 없는 것처럼 글도 도움을 받으면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독서의 힘으로 글쓰기의 힘을 키운다. 어떻게 무엇으로 읽기를 하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출발점에서 어떤 자세로 뛰어야 하는지. 시작했으니 무조건 달려야 하는지. 아니면 걸어도 되는지도 오롯이 본인의 선택이다. 어렵고 힘들다고 피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끈기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으면 힘이 생긴다.


자신의 인생노트에 써나가는 일이 고되고 , 화나고, 우울하고, 막히고, 부끄럽고, 슬프고, 짜증 나는 백팔가지의 이유로 힘들겠지만 그중에 한 가지를 풀어서 쓰기 시작하면 기쁘고, 즐겁고, 웃을 수 있는 일을 찾게 된다. 매혹적인 일들이 차곡차곡 노트에 담긴다.


다양한 방법과 길이 보인다. 길에 놓인 것을 찾으며 글을 쓴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결코 작은 행운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넉넉히 받아내고 삶을 키워 가는 글쓰기를 위해 그 글을 지켜주는 나의 글집을 만들기 위해 계절 속에서 변화했던 내 감정을 이제야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봐주길 바라는 내가 아니라 나에게 솔직한 내가 된다. ​책 속의 말들로 스스로를 일깨우며 조금씩 쓰는 것으로 무작정 내 달리는 글이 아니라 나를 덜어 내는 글로 세월에 나이 들어 감을 표현하는 ‘올드우먼’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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