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잡초로 약초처럼
임인년이 떠났다. 검은 호랑이 해였던 한 해 동안 무엇을 했는지 차근히 그리고 차분하게 생각한다.
깊게 읽기 시작한 책들과 글쓰기 덕분에 알고 싶지 않아도 나를 알아가게 되고, 보고 싶지 않아도 자꾸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가끔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기차를 탈 때면 일부러 역방향 좌석에 앉는다. 눈앞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보다 시야에 계속 머물러 있는 풍광이 편하게 와닿는다.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꿈꾸고 희망하는 나는 어제의 것을 잊고 오늘을 종종 놓치고 산다. 미래지향적으로 살라고 초중고 12년 교육에 4년 대학교육까지 받은 탓도 있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남들보다 더 잘 사는 것이라고 학습된 나의 사고思考가 만들어 낸 사고事故이기도 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앞으로 왜 살아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어떻게 살았었나를 되새기며 지금 무엇을 하며 사는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걸어온 발자국을 보며 지금 걷고 있는 발걸음이 바른 길로 걷고 있는지가 신경이 쓰인다. 살았던 시간의 삶을 되돌아보기로 돌려보면서 놓치고 잊었던 것들을 살펴보고, 실수했던 것과 잘못했던 일을 살핀다.
마디마디 분절시켜 보고 나면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챙겼던 것들보다 놓친 것들이 보이고, 잘했던 것보다 잘못했던 것이 눈에 걸린다. 놓친 것과 걸려든 것들을 객관적으로 두고 보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지나온 흔적을 지우거나 모른 척 덮어두지 않고 다시 고치며 노력하자는 용기가 생긴다. 순방향에 앉아서 내 눈앞을 휙 하고 지나가는 풍경이 아닌 역방향의 자리에서 더디게 나타나 머물러 있는 풍광처럼 담담하게 정리가 된다. 일상의 지루했던 상황들로 시끄러웠던 내 속이 조용해진다.
세상에 있는 작은 것들이 주는 의미를 알아가고 찾아지는 것도 내 나이가 쉰의 반을 넘어가고 있어서다. 스무 살이라면 서른, 마흔이었다면 역방향에 앉지도 않았고 설령 앉았다면 순방향이 아닌 자리에 불만만 가지고 목적지를 가는 내내 마음속으로 툴툴거렸을 것이다. 역방향이라도 타고 갈 수 있는 지금에 집중하지 않고 이 자리를 잡은 나를 타박하며 다음엔 실수하지 말자고 다짐했을 것이다.
지금, 내일을 꿈꾸며 오늘에 집중하며 산다. 변화하는 시간 속에 별다를 것 없는 스물네 시간을 살겠지만 그 안에서 주어지는 것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아끼며, 사랑한다 말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어제보다 콩 한 알만큼 더 열정을 쏟으며 지낸다.
그 열정으로 당장 보이지는 않아도 겨자씨만큼씩 자라는 성장의 시간을 만들고 글로 기록한다. 감사하며 크자고 쓴다. 매몰찬 바람에 꺾이지 않는 늘 푸르른 소나무가 아니라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비 오면 오는 대로 또 눈이 내리면 내리는 대로 다 받아내고 겪어내는 잡초로 약초처럼 살자고 적었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가 보내준 카톡 영상의 이지영 이투스 강사의 “사람이 자기 자신이 좋아지려면 적당히 독해야 된단다. 게으르고 나태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 사람은 언제 자기를 좋아하냐면 해야 될 것이 있을 때 성취하는 자신을 좋아하고, 계획이 있을 때 달성하는 자신을 좋아하고, 목표가 있을 때 도달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라는 말이 잊히지가 않았다.
‘자신이 좋아지려면 적당히 독해야 된다.’는 말이 화살처럼 와서 박혔다. 그녀의 말처럼 게으르고 나태한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였던 나에게 적확한 조언을 해 준 이 지영 강사님의 말을 듣고 이제라도 ‘적당히 독한 잡초로 해야 할 것을 성취하고, 계획한 것을 달성하고, 목표에 도달하는 약초처럼 살자!’라고 다시 고쳐 썼다.
계묘년, 검은 토끼띠인 한 해 동안 열정을 보였던 기록이 좋은 결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잡초로 약초처럼 화끈하게 살자!”라고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