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인연의 길이는 다 다르다.
초, 중, 고 12년에 대학교 4년까지, 16년의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학교 동창들과 헤어지고 만나면서 함께 했던 긴 시간들을 돌아보면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헤어져 새로운 반에서 낯선 선생님을 만나야 하는 3월의 새 학기는 두근거리는 설렘보다 긴장과 두려움의 시간이었다.
짝이 정해지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시간까지 그 어색하고 어수선한 마음은 사람마다의 차이는 있지만 낯설고 뻑뻑한 시간을 거쳐야 했다. 그 거친 시간을 견디고 이어가며 지내온 시간으로 만들어진 ‘친구’라는 이름의 아이들과 헤어지는 일은 친해지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웠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헤어질 때 아픔을 겪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힘겨운 시간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 되어 갔다.
나에게 있어 ’ 친구'는 사전적 의미인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넘어 ‘가깝고 깊게 사귄 오래 알면서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포함된 다소 무겁고 어려운 의미의 단어가 됐다.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열고 닫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친구’라는 말보다 같은 반 동창이라고 선을 그었고, 동기라는 말로 벽을 세웠다.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첫인상으로 내 머릿속 저울에 대고 저울질을 했다. 그렇게 ‘친구’ 사귀기에 까다롭게 굴었고, ’ 친구‘라는 단어에 신중함을 더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모임이나 회식에서도 선긋기는 사라지지 않았고, 친한 사람을 만드는 일에 여전히 소극적인 사람으로 살았다.
그랬던 내가 종교를 가지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그동안 가졌던 제한적 시선이 아닌 열린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게 됐다. 덜 힘들게 마음이 열렸다. 좁았던 마음과 시선이 넓어졌고, 넓어진 공간으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 추상적인 생각들로 가졌던 물음표가 단정한 마침표와 화사한 느낌표가 되었다. 신중함보다는 편안함으로 신뢰감이 생겼다. '나'와 ‘너’로 보고 보이는 시간으로 통상적인 ‘친구’가 됐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로 ‘친구’가 되면서 보낸 끈끈함으로 일상을 추억으로 채우면서 관계 맺기는 단단해져 갔다. 낯선 사람을 만나도 선을 그어 긴장감을 만들지 않았고, 단체 속에서 혼자 견디거나 어색한 시간을 이어가는 방법을 깊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마음이 닿는 사람에게는 용기를 내어 다가갈 줄도 알게 되고, 불편한 자리에서 끝까지 버티는 지구력도 생겼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있는 시간이 수월까지는 아니어도 어렵지 않았다.
만남이 수월해지고 친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짧아져도 여전히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면 할수록 쉬워지기는 커녕 하면 할수록 더 힘들었다. 고통이 체험한다고 단련되지는 않는것처럼 헤어짐의 시간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지만 성숙해지기 위해서 아파야 한다면 굳이 성숙하고 싶지 않았다.
직업 군인이었던 남편 직업의 특성상 빈번하게 겪게 되는 이사로 ‘만남은 곧 헤어짐이다’라는 공식은 정해진 절차가 되어 가는 삶이 이어졌다. 신앙으로 만났던 사람들과의 이별은 그 아픔의 폭이 더 넓었다. 넓어진 폭만큼 아팠고 고통의 시간은 길었다. 그렇게 헤어짐은 많이 괴롭고 자주 그리운 시간이 됐다.
시간은 덤덤하고 무심하게 지나갔다. 결혼하고 30년이 지난 지금 헤어짐의 빈도가 높아지는 반면 아픔을 느끼는 감각은 무뎌졌다.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에 대한 기대도 줄었고 헤어짐으로 느꼈던 아픔에도 둔감해졌다. 대신 보고 싶은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보다 만났을 때의 기쁨을 오래 간직하는 나만의 노하우가 생겼다.
가끔 허한 마음에 길을 잃기도 하지만 잃어버린 길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헤어짐은 슬프지만 만날 기대감과 만났을 때의 기쁨으로 덮어진다. 살아 갈 삶 그 안에서 ‘헤어짐의 아픔은 세상의 많은 고통 중의 하나일 뿐이다.’라는 말로 흔들리는 나를 잡는다.
인연의 길이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이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헤어짐을 동반하는 만남이 이제 더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인연을 만들어주는 하나의 과정으로 봐진다. 경험으로 삶의 연륜이 또 이렇게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