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립다
나는 손버릇이 나빴다. 그 일로 부모님 속을 뒤집어 놓았고 화를 자초한 탓에 부모님의 신뢰를 잃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믿음이 사라져 갈수록 나는 쪼그라들었다.
배나무에서 달아지며 익어가는 다른 배들과 달리 그저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덜 익은 채 느닷없이 떨어지는 배처럼 땅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중학교 2학년, 수직낙하하는 신뢰감을 끌어올려야 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일이 현실로 다가올 때마다 느껴지는 무력감이 숨통을 조여왔다. 실수를 넘어 죄가 되어가는 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용서를 빌었다. 용서를 받고 나니 더 많이 미안했다. 손버릇을 고치기 위해 무진無盡 애를 쓰며 신뢰감을 되찾고 과오를 바로 잡기 위해 나와한 단 한 가지 약속은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속이지는 말자!’였다. 그 어떤 순간에도 스스로에게 정직한 내가 되기 위해 되도록 입을 다물었다.
조금씩 믿어주는 가족들 틈에서 숨이 쉬어졌다. 떨어졌던 배가 다시 배나무에 붙었다. 떨어졌다 붙으면서 상처가 났다. 겉의 상처는 이내 사라졌지만 그 안의 상흔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과 신뢰심을 저버렸던 그 시절의 소녀를 자신의 마음속 다락방에 숨겼다. 숨겨진 소녀는 스스로 나쁜 아이였다는 꼬리표를 달았고 꼬리표는 죄책감이 되었다.
강박관념 같은 죄책감을 숨겨온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엄마가 된 소녀는 자신의 아들에게 지나치게 정직을 강요하며 별일 아닌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소녀의 아들은 나쁜 아이가 아니다. 작고 여린 아들 앞에 굳든 표정으로 매를 들고 있는 다락방 소녀가 엄마가 되어 서있다.
실수를 한 일곱 살의 아이가 손바닥을 맞으며 울면서 말한다. “ 엄마가 너무 무서워.”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너무 무서워하는 엄마라니. 아들에게 다락방 소녀의 정체는 숨긴 채 너의 거짓말 때문에 매를 들었다는 말로 무서운 엄마가 된 핑계를 댔다. 나의 꼬리표가 들키게 될까 겁이 났고, 강박관념이 된 나의 죄책감이 아들에게 옮겨져 혹여라도 아이 스스로 자신이 했던 작은 실수가 죄로 평생의 죄책감으로 장착이 될까 두려웠다.
아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고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매를 들지는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아이 손으로 ‘사랑의 회초리’라는 얼토당토않은 이름의 매를 휴지통에 버렸다. 그날부터 매를 드는 무서운 엄마에서 탈피하기 위해 또 한 번 무진 애를 썼다. 아이가 간혹 실수하면 생각의자에 앉히고 그 의자에 앉은 아이를 더 많이 안았다. 자라면서 아들은 믿음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나는 무섭지 않은 엄마가 됐다.
진심이 서로에게 닿았다. “사는 일은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립다.”라고 은유 작가가 말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비우고 덜어내는 일도 사는 일만큼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립다.‘
갱년기 우울증의 늪에 빠져 시간을 되돌려보면서 구석에 있던 내면의 소녀를 만났다. 아픔과 죄책감을 숨기고 바른 소녀가 되기 위해 애를 썼던 소녀. 자신이 만든 다락방에 숨겨놓은 어린 소녀를 데리고 나오는 일이 쉽지 않다.
자신을 믿어 준 가족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지내온 시간 속에서 움츠려 있던 소녀의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스스로에게 붙였던 꼬리표는 떼도 된다고,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주는 일도 마음먹은 대로 금방 되지 않는다.
굴곡진 시간을 지나면서 일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주어진 삶이 변화된다는 것을 알아간다. “세월에 저항하면 주름이 생기고 세월을 받아들이면 연륜이 생긴다”는 박웅현 작가의 말을 떠올리며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그 삶에서 개별적으로 사유되는 것들과 시간을 받아들이며 생긴 연륜으로 다락방을 나온 소녀와 오늘도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리운’ 그런 시간을 보낸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올드우먼이 되어 위로받고 치유되고 있는 다락방 소녀가 그 시간들로 만들어낸 연륜으로 고백의 글을 쓴다. 한 번에 하나씩 조금은 천천히 기억하고 추억되는 순간의 시간들을 더듬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