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를 쓰게 하는 것들
은유 작가님의 신간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서 ‘나를 쓰게 하는 것들’을 읽으며 과연 나에게 글을 쓰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든 것일까? 왜 쓰고 있을까? 지금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쓰고 싶은 걸까?
작가처럼 나 역시 남이 아니라 내 마음 나부터 알아주자는 해결책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내 마음임에도 이 마음이 왜 이러는지 나도 몰라서 무작정 털어놓기부터 했다. 모르니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설령 들여다 본들 보지도,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 말이나 빨간 노트에 털어놓으면서부터 조금씩 나 들여다보기를 할 수 있었다.
들여다보고 알아차리는 것도 마음에 공유 공간이 있어야 가능하다. 풍파가 나를 치고 지나가고 있을 때는 그 바람에 휘청거리느라 정신이 없고, 세상에 흔들리느라 사방이 암흑인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머릿속 생각이 내용도 없고 문맥도 엉망인 글이 되어 빨간 노트에 채워지는 동안만큼 살아졌다.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니는 마음이 나도 몰랐던 감정이 되어 갈애(목이 마르는 애착) 같은 문장이 되어 노트에 쌓였다.
회한과 미움과 비루함과 분노와 두려움과 불안을 페이지마다 담았다. 그렇게 담으니 보였다. 나를 쓰게 하는 것이 내 안에 쌓아두기만 했던 묵혀있던 감정임을 알아차렸다.
버리기 위해 쓰고 있었고, 사라지게 만들기 위해 적고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알아차리는 일이고, 알아차리는 것은 보고 있다는 것임을 깨닫게 됐다. 다른 누군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보는 것이다. 늘 보았던 앞이 아니라 옆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고 비틀어도 보고 꺾어서도 보고 위에서도 보면서 조금은 낯선 방식으로 가끔은 예민한 방법으로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었다.
이렇게 본다고 풍파로 풍랑이 일던 마음이 금세 잔잔해지지는 않는다. 더 많이 울게 되고 자주 화가 나기도 한다. 말이 글로 변환된 것들을 보면서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는 생각에 자조自嘲할 수도 있고, 그 자조가 고통이 되어 넘어질 수도 있다.
글쓰기로 에릭 와이너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알려주는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을 제대로 하지 않아 질문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되면 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이 아니라 몽테뉴처럼 죽는 법에 도착할 수도 있다. 그러니 글쓰기를 함에 있어 시몬 베이유처럼 스스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으로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고, 간디처럼 싸우면서 가야 한다.
나만의 글쓰기를 위해 내가 하는 소리를 쇼펜하우어처럼 듣고, 그 소리를 따라 루소처럼 걸으며, 공자처럼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며 가다 보면 꼭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을 알게 되어 보부아르처럼 늙어갈 것이다.
글쓰기를 하면서 읽게 되는 책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나를 쓰게 만드는 것들’로 통찰하는 힘을 길러 구원의 방편으로 찾게 된 쓰기를 통해 성장하는 삶을 살아내고 싶다.
살고 싶은 것으로 살아가는 내가 될 것이라고 글로 또 다짐 같은 고백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