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삶을 채우며 다시 일어서기

1 나의 사랑하는 생활

by 블랙빈

피천득 님의 에세이 『인연』에서 ‘나의 사랑하는 생활’을 읽으며 ‘나의 사랑하는 생활’을 찾아 본다. 찬찬히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살폈다.


나는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새벽 시간을 좋아하고, 그 시간을 기다리며 마시는 따스한 홍차 한잔을 좋아한다.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아이패드와 오아접이식 블루투스 키보드를 좋아하며,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면서 계획하고 사유했던 것들을 노트에 부드럽게 써 내려가게 해 주는 켈리 촉의 라미 만년필을 좋아한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게 됐다. 혼자 있는 시간과 자투리 시간에 가라앉으려는 나를 붙잡아 주는 문학작품 속의 주인공들과 그 주인공들과 그 사람들의 삶을 창작하는 작가들을 좋아한다. 가끔은 자기 계발서와 에세이 그리고 굳어있던 인식들을 유연하게 만들어 주는 인문학 서적 속의 철학자들의 사고와 지식들을 알게 되는 시간도 좋아하고, 함축적인 언어로 일상의 상황이나 사람들의 마음 심리를 꿰뚫어 보는 시인들의 시구도 좋아한다.


나는 허먼밀러사의 에어론 체어만큼 명품은 아니지만 많은 시간 나의 엉덩이를 책임져주는 한샘의 소박한 의자에 앉아 안방 벽에 걸린 이정남 화가의 ‘청화’를 바라보며 멍하니 관조하는 시간을 좋아하고, 이진원 화가의 ‘히스토리’를 보며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나는 봄의 꽃잎이 떨어진 동네 길이나, 가을날 잎이 떨어진 산책길 걷기를 좋아한다. 걸어가며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과 양어깨에 내려앉는 포근한 햇살을 좋아한다. 푸르고 청명한 하늘의 구름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장대비가 내리는 날, 우산에 부딪히는 빗소리 듣기도 좋아한다.


나는 내 눈에 익숙한 것들을 좋아한다. 비싸고 화려하지 않아도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는 오래된 것들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엄마가 쓰던 그릇들과 아이가 어렸을 때 사용했던 컵을 좋아하고, 눈에 익어 편안해진 냄비들과 부엌도구들을 좋아한다. 신혼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다소 무거운 목화솜이불을 좋아하고 신생아 때 아들이 입었던 배내옷을 꺼내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나의 시간과 손 때가 묻어 있는 나의 반려 물건들을 좋아한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좋아한다. 영화계 은퇴 이후 유니세프 대사로 인권운동과 자선사업 활동을 인도주의를 실천하며 살았던 오드리헵번을 좋아하고, 우리에게 “자신의 생에 감사하며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어요 “라고 말하는 배우 김혜자를 좋아한다.


나는 지어진 지 오래된 우리 아파트를 좋아한다. 지하철과 가깝고 주위의 아파트와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어 걷기 편하고, 근처 종합병원과 백화점과 식당들이 있어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우리 동네를 좋아한다.


나는 매일 오전 아들의 시각, 7시 21분과 나의 시각 11시 28분 그리고 오후로 넘어가는 남편의 시각 12시 28분에 나와 아들과 남편을 애정하는 마음으로 화살기도를 할 수 있는 지금의 여유로움을 사랑한다. 그리고 화요일 오전 9시 12분과 12시 7분과 수요일 오전 7시 31분과 오후 2시 23분, 4시 20분, 5시 16분, 목요일 오전 12시 11분과 오후 4시 10분, 6시 10분, 7시 18분, 마지막으로 금요일 오전 11시 14분과 오후 1시 30분, 3시 20분, 4시 28분의 시각에 친정 가족들을 떠올리며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나는 내가 가진 이 모든 것들과 나와 가족들을 생각하는 1분의 시각들이 모여 만들어진 나만의 시간을 사랑한다. 나를 생각하고 가족들을 사랑하는 그 시각들로 ‘나의 사랑하는 생활’이 채워진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누군가를 위한 1분의 시각, 그 시각들로 오늘을 산다. 눈이 부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