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활력 유지의 비결, 함께 마시는 한 잔의 술
술을 애정한다.
비록 술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술에 대한 나의 애정은 변하지 않는다. 단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을 홍당무로 만드는 술은 컨디션에 따라, 기분에 따라 그리고 마시는 사람들과 마시는 곳의 환경에 따라 그 맛과 양이 달라진다.
술에 대한 첫 한 모금은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한다.
고기보다는 생선을 좋아하시는 친정아버지는 일요일 새벽, 바닷가 조깅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회센터에서 매 번 회를 사 오셨다. 아침 밥상에 올라온 회를 먹으며 소주 컵에 야트막이 부어진 포도주를 처음 마셨다. 어린 시절 회를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날것의 생선으로 탈이 날까 걱정이 되어 부어 준 것인지 아니면 내가 마셔보고 싶다고 떼를 써서 마시게 된 것인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여하튼 초등학교 4학년 겨울 어느 일요일 아침 어머니의 담금주인 포도주가 인생 첫 한 모금이었다.
달고 맛있었다. 그 뒤로 회를 먹을 때는 술과 ‘함께’가 공식화되었다. 술 덕분에 회가 좋아졌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늘어가던 술에 대한 애정이 갑자기 커진 것은 결혼하고 한참 뒤였다.
미성년의 아들이 성년의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생긴 자유시간으로 밤마실이 시작되었다. 점심시간에만 국한되어 있던 동동(동네동생)이들과의 모임에서부터 각종 모임이 저녁 시간에도 가능해졌다. 간헐적으로 좋아했던 술이 주기적으로 사랑하는 술이 되었다. 신데렐라의 시간까지이지만 깜깜한 밤에 마시는 술은 달았다. 10년간 소란스럽지 않은 달곰함에 빠져 주기적으로 착실히 술을 애정하며 지냈다.
남편이 전역을 하고 B 시로 오고 난 뒤로 아쉽게도 주기적인 술자리가 사라졌다. 달곰했던 시간들이 신데렐라 호박 마차가 되어 사라졌다. 다시 간헐적으로 좋아하는 술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술은 몸에 해롭다고. 과하면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그럴 수도 있다. 과한 양의 술이 몸을 아프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적절함을 유지한다면 사람이 마시는 술일 뿐이고, 술이 사람을 마시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한 잔의 술은 삶의 활력과 마음을 다독이는 수단이 되어 준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에서 고등학교 교사인 마르틴은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알코올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가설에 힘입어 그것을 실험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 네 사람-니콜아이, 마르틴, 페테르, 톰뮈-은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유지할 것과 밤 8시 이후엔 술에 손대지 않을 것을 규칙으로 정한다. 그들은 규칙에 따라 몸속 혈중알코올농도를 0.05%를 유지하면서 따분한 일상에 활력을 찾고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의 상태에 만족한다.
영화는 청소년들의 음주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덴마크 술 문화에 대한 경각의 의미와 적절함을 벗어난 과함의 위험성을 보여주고 삶의 열정을 찾게 해 주는 음주의 활용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 삶은 어느덧 비극이고 어쩌다 희극이며 어쩌면 한바탕의 춤‘이라 했다. 술은 삶을 비극으로 혹은 희극으로 만드는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네 인생을 춤추게 만든다. 독배를 마시고 춤을 추게 될지 또 약을 먹고 춤을 추게 될지는 각자의 의지이고 몫이다. 아직 나는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술이 아니라 숨어 있는 열정을 찾게 해주는 수단으로써의 술로 삶의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
삶에 한 잔의 술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선택인 술을 일주일의 하루, 친정 부모님 댁에서 가족들과 함께 주기적으로 만나 간헐적으로 마신다. 이렇게 간헐적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약이 되는 한 잔 술로 ‘어느덧 비극이고 어쩌면 희극이며 어쩌면 한바탕의 춤인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