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삶을 채우며 디시 일어서기

4 일 첩의 글상

by 블랙빈

1월의 책 읽기 작가로 김훈을 정했다.


그가 집필한 책들 중에 읽고 싶은 책을 골랐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현의 노래』, 『하얼빈』. 책을 읽으며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썼을까? 무엇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 숨어 있는 문장 하나를 찾아서 쓴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귀에 책 속의 인물들이 살았던 시간의 소리가 들린 것인지 묻고 싶었다. 대가大家의 시각視角은 평범한 시선이 아니었고, 보통의 사고思考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는 작가의 오감에 경외심이 인다.


자신의 직업을 ‘작가’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고, 소로처럼 보고, 쇼펜하우어처럼 듣고, 시몬 베이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며,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어야 하는 것인지. 또 한 번 명사의 단어인 ‘작가’라는 이름을 가진 분들의 위대함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차를 마시고 짧은 감사일기를 쓴다. 일기의 문장은 단순한 단어들로 완성된다. 내 머릿속 밭에 심어진 단어들 중 감사와 청원, 그리고 감정을 나타내는 말을 골라 글상을 차리려니 글의 재료인 단어가 부족하다 못해 빈약하다.


밭에 심겨 있는 단어들을 잘 돌보지 않은 탓이다. 해서 부지런히 책을 읽으며 책 속의 어휘들을 밭에 새롭게 심고 키우고 있는 중이다. 처음 가졌던 의욕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아 어렵고 힘들다.


독서를 하며 떠오르는 생각을 내식대로 사유하고 묻어두었다. 삶에서 알았던 것들이 더해지는 책 읽기를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았고, 맞춰보지 못했다.


이제야 조금씩 달아났던 생각과 숨어 있는 감정, 내 것이 아닐 줄 알았던 욕망 같은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 밭에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내는 일임을 알아간다.


‘삶은 명사로 고정하는 게 아니라, 동사로 구성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오해받을지라도 순간의 진실을 추구하고,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며 살아갈 때만 아주 미미하게 조금씩, 삶은 변하는 것 같다.‘라는 은유님의 말처럼 내 삶이 미약하게 변화하고 있다.


명사로 고정되지 않고 동사로 구성되는 것들로 들추고, 헤집고, 그렇게 밭을 갈아엎으면서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씩 알아가며 변하고 있다. 기억하지 못했던 혹은 덮어두었던 과거의 시간이 음으로 양으로 도움이 된다. 그것으로 계속 밭을 일구고 있다.


닥치는 대로가 아니라 한 번에 한 고랑씩 천천히 갈고 그 자리에 씨앗을 뿌린다. 섣부르게 기적처럼 하루아침에 꽃피고 열매 맺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머릿속 밭에 있는 단어와 새로 심어 자라고 있는 어휘들로 한 문장이라도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당장 십이 첩 반상의 수라상이나 구첩반상의 사대부 밥상은 언감생심 바라지 않는다. 이제 겨우 일 첩 반상이다. 앞으로 계속 책 읽기와 글쓰기로 머릿속 밭을 일구고 잡초를 뽑아내고,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가꾸어 가면 삼 첩이나 오 첩 반상의 글상을 차리게 만들 재료들이 꽃피고 열매 맺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3월의 작가 박완서 님의 『나목』과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으며 김훈 님과는 결이 다른 대가의 글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찾고 가꾼다. 나의 밭에서 새롭게 자라나는 단어로 글로 지어 상에 올린다. 일 첩의 글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정성을 들인다.


<사진은 이정남 화가님의 ‘청화’ 시리즈 중의 하나입니다.>




작가의 이전글3장 삶을 채우며 다시 일어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