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당신의 삶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자전적 에세이
책이 출간됐다. 블로그로 알게 된 온라인의 이웃들이 오프라인의 친구가 되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각자의 시간을 거쳐서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의 여정이 글에 담겨 있다.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오면서 겪었던 일들이 한 권에 책으로 묶이기까지 참 많은 우여와 곡절이 있었다. 공저라 가능했다. 혼자였다면 애초에 쓸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고 설령 목차를 쓰고 프롤로그를 썼다고 해도 본문에 담길 내용과 에필로그를 완성하지 못해 허공을 맴돌다 끝내 사라졌을 것이다.
갱년기가 오는 줄도 몰랐을 만큼 자신의 몸을 몰랐다. 세상에 있는 유희와 노느라 때가 되면 찾아오는 손님을 등한시했다. 주위에서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손님이니 때가 되면 갈 줄 알았다.
선근증으로 고생했던 젊은 날, 고통과 아픔의 압박에서 해방되고자 수술을 했다. 한 달에 한 번 맞이하던 손님을 대접해야 하는 여인에서 대접받는 빈궁마마로 승격되어 십여 년을 편하게 살았다. 그래서 때가 되면 찾아 올 손님의 존재를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갱년기 호르몬의 변화로 고초를 겪는 시간에 위로와 위안을 주었던 곳이 블로그의 세계다.
무엇을 하겠다고 작정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속에 쌓인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맬 때 알게 된 곳이 블로그였다. 익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힘들거나 즐거웠던 일들을 자신의 일기장에 토로하는 곳이고, 알고 싶고 보고 싶은 것들을 찾고 알려주는 백과사전인 곳이 블로그였다. 누구나 어떤 글을 쓰든 상관없고 사진으로 도배를 해도 괜찮다. 자물쇠로 잠가두면서 쓰는 일기장 혹은 말하지 못하고, 할 수 없는 이야기도 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아무거나 막 썼다. 그냥 속의 것을 맘대로 쏟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중년의 자신에게 찾아온 손님 갱년기와 공생하는 법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반가운 손님은 아니지만 찾아온 손님을 야박하게 내쫓지 않고 온갖 비타민으로 달래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그 손님을 데리고 햇살과 바람 아래 산책하고, 동네 맛집을 찾아다니며 산해진미도 가끔 먹인다. 속내를 보여줘도 허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벗도 만나고, 멀리 있는 벗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핑계로 여행도 갔다.
그 이야기를 사진에 담아 짧게 일기처럼 썼다. 그러다 이웃이 늘고 느는 이웃들 사이에서 ‘원앤원’들을 만났다. 조금씩 쓰던 글이 길어지고 일상의 루틴이 만들어졌다. 흐트러져있던 마음이 모아졌고 모아진 마음이 단단해졌다. 그렇게 자신을 알아가면서 외력에 맞서는 내력을 키워갔다.
지금의 일상의 소소함보다 세상에 있는 책들이 내는 북소리를 내 안에 담으며 내력을 키우고 있다. 책마다 내는 소리가 다르고 그 소리가 나에게 다가오는 파장이 다르다. 음의 높고 낮음과 장단에 따라 소리가 만들어 내는 음률은 천차만별이다. 그중에서 마음속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보인다. 머뭇거리지도 멈추지도 않게 걷게 만드는 힘을 그 소리가 들려준다.
우리의 책이 그리고 나의 글이 정겨운 소리가 되어 누군가의 마음의 문과 창을 열게 만들어 스스로 길을 나서게 되길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