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집이 깔끔하다면 그건 당신이 글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집은 깔끔하다.
글을 쓰지 않아서가 아니라 퇴직하고 남편이 가사의 일부분을 맡아주고 있는 덕분에 집은 대체로 깔끔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남편의 건성건성한 청소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바로 잔소리를 하거나 여자가 다시 청소기를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잔소리 대신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설거지도 그릇받이에 그릇이 마구잡이로 올라가 있어 위태해 보여도 그 위태함에도 떨어지지 않는 그릇들의 생명력과 남편의 묘기에 탄복하며 칭찬을 한다.
가사노동에서 해방된 미타임의 시간. 남편이 밀대에 정전기 부직포를 끼워 방 이곳저곳을 밀고 다니고 밥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는 그 시간에 여자는 글보다는 주로 책을 읽는다. 작정하고 글을 쓰기보다 결이 닿아 있는 작가의 책을 찾아 그동안 맛보지 못한 미식의 세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글쓰기를 하면서 ‘아직 내 글은 힘이 없다. 힘이 없기에 글로 세상 사람을 치유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자각한 이유도 있지만 그것보다 글쓰기로 남이 아닌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힘을 키워 자신과 마주하고 치유할 글쓰기를 하기 위해 쓰기보다 읽기가 더 필요함을 인지했다. 해서 더 많이 더 오래 쓰기보다 더 길게 더 깊게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힘을 가진 책으로 밥을 하고, 마음을 울리는 글을 반찬과 국으로 만들고 간혹 함축된 단어가 즐비한 시인들의 시로 디저트를 장만하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는 난해함이 즐비한 철학자들이 건네는 말로 술을 담그는 시간을 가진다. 남편의 수고와 노력이 만들어 준 미타임의 시간으로 먹거리가 준비되면 여자가 가지고 있었거나 새로 장만한 그릇과 잔, 숟가락과 젓가락,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서 맛있게 먹고 마신다.
자신이 이름이 찍혀있는 단행본의 책을 내서 출간하겠다는 소망보다 먹고 마시는 시간으로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 안에 있는 것들을 표현할 단어들을 찾아내서 문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다. 자신이 왜 그랬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 그렇게 해서 그땐 어땠는지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고, 해보지 못해서 지금은 어떤지. 누군가가 아니 지금 자신이 어떤지를 글로 표현하게 되길 갈망한다.
이제야 자신을 들여다보고 원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는 여자가 대견하면서도 가끔은 짠하다. 들여다볼수록 더 미로를 걷는 기분이고, 안갯속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여자는 그래서 글쓰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여자는 너무 오래 자신이 정해놓은 모습으로 살았다. 바라는 어떤 모습을 만들어 놓고 그 모습이 ’나‘라고 단정 짓고 그 모습대로만 살았다. 그 모습의 ‘나’를 만들기 위해 애쓰며 사는 ‘나’로 너무 오래 살았다. 지금부터 다르게 살고 앞으로 달라질 여자의 내일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