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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설 Jul 08. 2024

토지 1부 2권 ②

  토지 1부 2권 ②  》


아이들 눈에는 분 바르고 비단옷 입고 훨훨 타는 장작불에 비친 여광대의 모습은 황홀하게 아름다웠을 것이다. 노름꾼 머슴들 장돌뱅이들 가릴 것 없이 청하기만 하면 해우차[花代]를 받고 몸을 파는 여자라고 차마 알려줄 수 없는 일이다. 봉순네는 사당이건 광대이건, 창을 하든 재주를 부리든 계집이면 모두 몸을 파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대개가 또 그러했었다. 탈놀음과 남창(男唱)은 엄한 법식에 따라서 오랜 세월 피나는 수련을 한 광대들인데 따라서 나이도 지긋했었고 그들은 자신의 업(業)에 대하여 고집과 자부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과 달리 법식도 없고 사장(師 長)도 없고 닥치는 대로 잡동사니를 내용으로 하며 이 마을 저 마을
뜬구름같이 떠돌아다니는 게 사당들인데 그네들은 굿거리에서 매춘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사당이 위주가 된다.
여사당에게는 거사(居士)라는 남편이 있고 이 거사는
계집의 시중을 드는 대신 벌어들이는 해우차는 인솔자인 모갑(某甲)에게 일부를 바치고 나머지로써 생활을 꾸려가는, 말하자면 계집 팔아서 의식을 해결하는 사내였다.
그런 만큼 여사당은 매춘부치고도 아주 비천하며 역시
뜨내기 신세인 매분구(賣粉姬)와 다를 바 없는 창녀인 것이다. 당대의 명창들을 무색하게 했던 여광대 채선(彩仙)이라는 여자가 있어서 그의 이름이 한량들에게 널리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창극을 무척 좋아했던 대원군의 총애를 받았다는 그간의 소식이야 봉순네가 알 까닭이 없겠으나 설령 알았다 한들 농사꾼 계집이 되어 펼 날 없는 고생을 바랐으면 바랐지 결코 딸이 광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p.277~p.278)

"사실인가 보오. 갑신변란 때 미국으로 달아난 서재필이란 사람이 돌아와서 만든 독립협회라는 게 있지 않소. 그 단체에서 꾀한 일인 모양인데 이게 또 기승을 부린다면 장차 왕실이 위태로워질 것인즉, 게다가 상감께서는 개화당을 싫어하시는 터이라 그 왜 참의대신 조병식이 보부상들을 긁어모아서 만든 황국협회, 그 단체에서 무리를 풀어서 만민공동회를 쳐부술려고 습격을 했다는 소식이오. 세상이 미묘하게 돌아가고 있소이다."(p.330)

북방에서 흘러들어오는 문물 이외 거의 폐쇄 상태에 있는 땅에서는 그것이 정신이든 물질이든 자체 내에서 공급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까닭으로 하여 한층 완강하게 떠받쳐져 왔던 한반도의 이씨 오백 년의 정치체제는 오백 년이라는 그 기간이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장기 집권이었던 만큼 굳어질대로 굳어졌다 할 수 있고 늙어서 쇠잔해졌다 할 수도 있겠다.(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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