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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선생 Nov 17. 2023

철인 3종 도전기

수영 3.8km  사이클 180.2km 마라톤 42.195km 

2023년 9월 구례 아이언맨 철인3종 대회

226km의 레이스 출발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 하단)

내가 가진 능력은 꾸준함 뿐이다. 


 학창 시절부터 운동과 담을 쌓은 나였다. 

 가을 운동회가 다가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달리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런 내가 철인 3종 킹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2km 마라톤 42.195km)를 완주하다니 잘 믿기지 않는다. 몇 주의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의심쩍은 마음으로 완주 사진들을 한 장씩 넘겨본다. 그날의 고통을 다시금 되새겨 보며 완주의 기쁨을 방구석에서 혼자 만끽한다. 


 육체의 고통은 2023년 9월 10일 단 하루였다. 지금은 그 고통이 내 머릿속에만 추억으로 남아있고 기쁨의 성취감은 아직도 온몸을 채우고 있는 것 같다. 더불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함께 말이다. 철인 3종을 시작한 계기는 수영장에서 만난 철인 회원이었다. 철인 3종에 관심은 없었지만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이 나에겐 꽤나 인상적이었다. 몇 개월의 고민 끝에 능력은 없었지만 꾸준함을 가졌다는 생각에 무섭지만 철인의 문을 두드렸다. 



철인 3종은 여러 종류의 경기가 있지만, 대략은 아래와 같다. 

스프린트 수영-750m/싸이클-20km/마라톤-5km

올림픽 수영-1.5km/싸이클-40km/마라톤-10km

하프 수영-1.9km/싸이클-90km/마라톤-21km

풀 수영-3.8km/싸이클-180km/마라톤-42km


 구례 아이언맨 철인 3종 대회

 철인 훈련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막 지날 무렵 난 첫 대회를 출전했다. 처음부터 풀코스를 뛸 수가 없어서 여주에서 열린 하프 코스의 철인 3종 대회를 경험해보고자 했다. 대회 전 날 저수지 물을 방류한다는 소식과 함께 수영경기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영이 달리기로 바뀐 것이다.   

 바로 듀애슬론 경기로 전환된 것이다. 


 "아! 참으로 참담하다"

 대회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비벼볼 만하게 수영인데 수영이 취소되다니 참 난감했다. 달리기 8km, 자전거 90km, 달리기 21km였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대회는 치러야 했다. 첫 경기라서 더욱 가슴이 떨려왔다. 첫 8km 달리기도 무난하게 잘 들어왔다. 다음은 90km 자전거다. 출발과 함께 난 페달을 구르기 시작했다. 

"어?? 잘 달려지네.." 사람들을 하나 둘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잠재적 능력이 있었구나!" 90km 자전거를 나름 잘 타고 들어왔다. 

 뿌듯하고 기쁨 마음을 가지고 마라톤을 시작했다.  

 뛰는 순간 나도 놀라고 내 다리도 놀랐다. 

 "이건 내 다리가 아니야!!"

 달리기를 시작한 지 1km가 지나자마자 난 뛸 수가 없었다. 아! 실수했구나. 체력 안배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겨우 완주할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난 머리가 어지러웠고 오바이트를 하며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었다. 철인 3종 경기 사망 사고가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여주 철인 3종 하프대회를 이렇게 마쳤다. 


3.8km의 수영이 끝나고 바꿈터로 향하는 모습

뿌리를 내리는데 시간이 걸린다. 


 2주 후, 첫 대회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구례 아이언맨 킹코스에 도전하게 되었다. 체력 안배를 머릿속에 염두하고 또 염두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완주하자! 걷지만 말자!라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잘할 수 있겠지? 포기는 하지 말아야지! 대회가 끝나면 난 오늘 밤은 편히 잘 수 있을 거야!"

라며 스스로에게 응원하며 발걸음을 뗐다. 

 그래도 수영은 몇 년 배웠다고... A조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과의 충돌이 생각보다 심했다. 

 "이건 전쟁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 등으로 올라오거나 내 발을 잡았다. 물속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고 아비규환이었다. 가다 보니 나도 누군가의 등으로 올라가고, 누군가의 발과 팔이 잡아당겨졌다. 다른 영자들도 일부러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내가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수영을 천천히 해야 자전거와 달리기를 할 수 있다는 여러 선배들의 말을 듣고 수영은 안 한 것처럼 출수를 하고자 에너지 소비를 많이 하지 않았다. 수영 3.8km를 했는데 몸이 가벼웠다. 다행이다. 나중에 등수를 보니 수영에서도 상당히 좋은 등수로 출수를 했다. (이거라도 잘해야지...^^)  

 빠른 완주가 목표가 아니라 쉬지 않는 것이 나의 목표다. 


 수영을 마치고 바꿈터로 들어갔다. 바꿈터에서도 천천히 하려고 계획했다. 바꿈터도 나에겐 휴식시간이라 생각해서 천천히 옷을 갈아입고 자전거를 챙겨 출발했다. 난 속으로 외쳤다. 

 "빨리 가면 안 돼!, 빨리 가면 안 돼! 아직 나에겐 마라톤이 남았어!"

80km 정도까지의 거리를 달리면서 속도를 자제하면서 페달을 밟았다.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내며 머리를 자전거에 푹 숙인 채 페달을 눌렀다. 

100km가 넘어가면서 내 다리는 점점 굳어져 가는 것만 같았다. 큰일이다. 아직 80km가 더 남았는데...

후회가 되었다. 일부러 속도를 올리지 않았던 것에 후회가 밀려왔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속도를 조금 높일 걸 그랬나? 많은 분들이 나를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사실, 사이클 시작부터 많은 사람이 나를 앞질러 갔다. 


 사이클이 너무 힘들다. 허리가 부러질 것 같다. 내리지도 못하고 속도는 나지 않았다. 7시간이 다 돼서야 난 겨우 바꿈터로 들어올 수 있었다. 온갖 힘든 표정과 축 처진 어깨로 바꿈터에 들어섰다.  

 바꿈터에 들어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다시는... 다시는... 철인 3종을 하지 않으리..."


바꿈터   

철인 3종 경기는 세 경기를 해야 하므로 경기가 바뀔 때마다(수영에서 사이클, 사이클에서 마라톤) 준비해야 하는 장비가 있으므로 준비하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 그 장소가 바로 바꿈터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된다. 


 이제 한 종목만이 남았다. 바로 "죽음의 레이스" 마라톤이 남아있다. 여주 대회 때 달리기에서 무너졌던 날을 기억하며 천천히 발을 떼기 시작했다. 속도는 내지 않아도 걷지는 말자라는 생각으로 언덕을 올랐다. 

 "10km만이라도 뛰어보자!" 생각보다 10km가 잘 뛰어졌다. 

 10km가 지나고 난 다시 "20km까지라도 뛰어보자!"라고 외쳤다. 

 힘들었지만 많은 분들의 응원으로 버티면서 쉬지 않고 뛸 수 있었다. 

 "30km까지 뛰어보자!" 다리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앞을 향해 뛰고 있었다. 모든 보급소를 들러 물과 음료를 마시고 스프레이로 다리를 도배했다. 뛰다 보니 어느새 7km만 남았다. 

 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과 쫓아오는 같은 동호회 회원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페이스가 7분/km이었다. 

 마지막 가는 길이 무척이나 힘들고 쓰러질 것 같았다. 새벽에 출발했는데 그새 하늘은 무척이나 캄캄해진 상태였다. 마지막 스타디움에 보이는 불빛만 의지한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앞서가는 한 사람이 보였고 멀리서 나를 뒤쫓는 한 사람이 보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 길을 마치 걷듯이 뛰고 있었다. 결승선이 보였고 외국인 장내 아나운서가 서투르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드디어 해냈구나! 드디어 해냈구나!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결승선에 들어와 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다행히 오바이트는 하지 않았고 어지러움도 없었다. 여주에서 배웠던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늘 하루가 무척이나 길었지만 이 하루를 난 길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2024년 군산 킹코스 대회 신청이 언제였더라?.....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

 수영

 수영을 시작한 건 내 나이 마흔 살.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와이셔츠가 터질듯한 배를 출렁이며 다닌 내가 처음 시작한 운동이 바로 수영이었다. 자유형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개울가에서 아버지에게 배웠던 요상한(?) 개구리 수영이 나에겐 전부였다. 무작정 수영장을 등록하고 무척이나 열심히 새벽 수영을 시작하였고 매일매일 수영장에 다니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영 시작 8개월 만에 생활체육인 전국대회도 경험해 보았다. 수영의 매력에 빠지면서 몇 년간 수영과 대회에만 집중하였다. 어느새 수영장 선두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경험과 여러 개의 자격증까지도 취득할 수 있었다. 바다수영에 취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영상도 제작하여 인터넷에 업로드도 하였다. (물론 지금은 시간 관계상 영상 제작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수영에 자신감이 붙었다. 늦게 시작했지만 수영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게 다였다. 난 수영밖에 할 수 없었다. 


자전거

 2023년 5월 말, 첫 중고 자전거를 구입했다. 세상에 자전거가 이렇게 비쌀 줄이야! 

흘려듣기는 했지만 직접 구입하려니 비용이 만만찮다. 자전거 비용만 있는가? 그 외 장비도 적잖은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에라 모르겠다. 후회하지 말고 운동 열심히 하자라는 마음으로 잊기로 했다. (물론 잊히지는 않더라...)


 처음 자전거를 타고 동호회 회원끼리 운동하는 날 난 자전거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낙차다. (낙차가 웬 말이냐?). 엉덩이 밑 부분이 쓸렸고 난 2주간 운동을 하지 못했다. ㅜㅠ 안타까운 일이다. 

2주 후부터 다시 자전거를 탔지만 동호회 회원들을 따라갈 수 없는 볼품없는 실력이었다. 그들을 따라가기는 힘들어도 앞으로는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탔다. 여러 회원들도 나를 기다려주고 가르쳐주며 나를 키워주었다. 또한 쉬는 날을 이용해서 재미있는(?) 지옥 훈련도 시켜주셨다. 80km 강화도 라이딩, 160km 팔당 라이딩 등 즐겁지만은 않은 순간들이 기억이 난다. 


 아! 이 고통의 순간들과 시간들이 나에게는 뿌리를 내리고 있겠지? 

 한강 편의점의 한 통의 이온음료와 박카스가 내 뿌리를 더욱 튼튼하게 하는 것만 같았다. 


달리기

 달리기는 정말 하고 싶지 않다. 정말 하고 싶지 않다. 

 다른 종목들도 어렵고 힘들지만 나에겐 정말 달리기가 어렵다. 

 달리기는 22년 12월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부터 동네 한 바퀴씩 달리기 시작했다. 첫 목표는 쉬지 않고 4km였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았고 오직 쉬지 않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첫 목표를 첫날에 성공했다. 5km를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고 조금씩 속도도 붙기 시작했다. 주 3회 새벽시간을 이용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주변에 달리기를 잘하시는 분들의 도움으로 금세 10km를 완주할 수 있었다. 


 3달을 열심히 해서 23년 동아마라톤 10km 마라톤 첫 대회를 출전했다. 난 H조에 편성되었다. 가장 끝 조였다. 기록이 없는 사람은 가장 뒤에서 출발한다. 기록이 좋을수록 A조 쪽으로 갈 수 있다. 대회 당일 난 혼자 대회에 나갔고 무척 추웠던 기억이 난다. 반팔 반바지 입고 1시간 동안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뭘 준비해야 하는지 대충 알고 있다.) 경기가 시작되고, 난 앞 뒤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달렸다. 출발 신호와 함께 한참을 달리다가 시계를 보니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이런. ㅜㅠ 이러다가 금방 지쳐 버릴 것 같았다. 


 내 목표는 55분이었다. 내가 세운 목표보다 훨씬 빠른 49분대로 들어와 버렸다. 들어온 순간 횡격막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드디어 A조다. 그런데 내 몸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뛴 증표로 난 대회가 끝나고 2주 동안 잘 걷지를 못했다. 바보처럼 보폭을 너무 넓히고 뒤꿈치를 찍으면서 달려서 무릎에 부상이 온 것이었다. 그 뒤로는 빠르게 가기보다는 부상 없이 안전하게 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렸다. 


도전하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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