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를 듣고 생각난 일화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가수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라는 노래가 심심찮게 들린다. 음의 높낮이도 별로 없고, 그저 옆에서 독백하는 것 같은 노래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부러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사이다 가사에 있을 것이다.
남들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보고 느낀 것이 많을수록 경험의 폭과 양이 많아지고, 부러움의 감정을 더 자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예능 등 다른 사람의 삶을 관찰하기 쉬운 구조가 된 사회이기에 이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우리에게 마음의 동요를 더 자주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보이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다가 나의 기준을 잃어버리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의 한 면만을 보고 전부라고 착각하며 따르다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리거나,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고, 자신을 비교하며 조급함으로 인해 과하게 일을 밀어붙이다가 번아웃이나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부러움, 세종은 과연 이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는 유명한 독서광이다. 밥을 먹을 때도 책을 손에 쥐고 있던 그였기에, 아들의 눈 건강을 걱정한 태종은 책을 다 치우라고 명한 적도 있다. 신하들이 책을 거둬들이며 미처 챙기지 못했던 책 《구소수간》은 세종이 1,000번을 반복해서 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책에서는 다양한 성공 사례들이 나온다. 중국의 어떤 왕이 이런 리더십을 펼쳐서 전쟁에서 이겼다더라, 어떤 왕은 나라의 곳간을 풍족하게 만들어 백성이 만세를 불렀다더라 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이 사례들을 읽으면서, 어떤 이는 리더십에, 어떤 이는 나라의 환경적 특성에 부러움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세종은 어떠했을까?
세종 12년, 그는 조선의 음악을 정립하면서 중국의 음악인 아악에 이의를 제기한다. 아악은 중국의 음악이라 중국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우리 백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악에서 쓰이는 악기의 재료는 그 성질이 중국과 우리나라가 다른데 똑같은 방법으로 악기를 만든다면 소리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아악을 쓸 것이라면 그 악기는 중국의 재료를 써야 하고, 그럴 수 없다면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재료로 악기를 만들고, 우리가 작곡한 곡을 연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연(朴堧)이 조회(朝會)의 음악을 바로잡으려 하는데, 바르게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율려신서(律呂新書)》도 형식만 갖추어 놓은 것뿐이다. 우리나라의 음악이 비록 다 잘 되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반드시 중국에 부끄러워할 것은 없다. 중국의 음악인들 어찌 바르게 되었다 할 수 있겠는가.” (세종 12/12/7)
세종은 중국의 음악서인 《율려신서》를 보며 부러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보완점을 찾았고, 조선에 맞는 악기와 음악을 만들며 주체성을 확립했다. 결국, 세종은 박연과 함께 ‘보태평’, ‘정대업’ 등과 같은 향악을 만들었고, 후대 세조 이후에는 아악을 대신하게 된다. 이로써 궁중 음악이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의 음악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세종은 음악뿐만 아니라 농사에도 진심이었다. 그는 농사를 두고 중국의 농서에만 의존했던 것을 지적하며, 풍토에 따른 농법의 차이를 고려하여 각 도의 농부들에게 직접 농사법을 묻고 또 물었다. 이를 토대로 조선의 기후에 맞는 풍토와 실정에 알맞은 농법을 저술하게 했다. 세종은 이렇게 완성한 책, 《농사직설》을 여러 도의 감사를 비롯한 관원들에게 반포하고, 농서에 따라 경작할 것을 권유하며 조선의 농업생산력을 끌어올렸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세종은 먼저 제작된 책이나 사례에 관해 부러움이라는 감정에서 끝나지 않고 이를 국가를 위한 업으로 만들었다. 그에게는 아주 좋은 배움과 예시였다. 그는 항상 무슨 일을 할 때, 과거의 성공 경험과 사례를 찾아 학자들로 하여금 거기에서 배운 깨달음과 성찰들을 공유하곤 했다.
“그대의 자질이 아름다움을 내가 이미 아노니, 그만두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가) 온 마음과 힘을 기울인다면 장차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세종 22/7/21)
본디부터 일에 정통하지 못해서 잘못 그르칠까 두렵다고 이야기하는 이사철에게 세종은 함길도 의 경력직으로 삼으며 ‘그대가 가진 아름다움’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주변을 둘러보기 전에 나에게 먼저 집중하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과연 부러워하는 대상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기 전에, 내가 가진 아름다움을 아는 것. 그 아름다움에 온 마음과 힘을 기울이는 것. 보이는 것에 매료되어 나의 아름다움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종은 오늘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