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 이어폰

by 기다림

대학교는 개강한 지 12주째에 접어들었다.

이번 주부터는 축제도 시작했다.

3월의 총명했던 눈빛은 온 데 간 데 없고

학생들은 시험과 과제에 지쳤다.


지친 아이들을 위해

지난 시간에는 영화 한 편을 감상했다.

간식도 허락해 주어서

조는 친구들 없이 재밌게 봤다.

하지만 오늘도 그럴 순 없어

'감상문' 수업을 했다.

감상문이 무엇인지

요즘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있는 감상문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리고는 '개요'를 작성하는 시간을 주었다.

11주 동안 훈련을 한 덕분인지

개요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흐뭇하게 지켜보면서

학생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데

뒷자리에 앉은 학생 한 명이 손을 들며 도움을 요청했다.


"뭐가 잘 안 돼?"

"그게 아니고 뭐 하면 돼요?"


당황스러운 마음을 붙잡고 웃으며 학생을 봤다.

귀에 보라색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귀에 꽂고 있느라 수업을 안 들었구나."

"근데 저 아무것도 안 들었는데요."


아무것도 안 들었다며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은

나를 더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나도 무선 이어폰 껴봐서 안다.

아무것도 듣지 않아도

노이즈캔슬링 기능 덕분에(?)

외부 소리는 차단된다.


아니.

그런 게 아니더라도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다는 건

수업을 들을 생각이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부글부글 올라오면서 화가 났다.

잔소리를 퍼붓고 싶었으나 참았다.

하지만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지는 않아서


"수업 안 듣고 물어보니 알려주기 싫네요."

라고 소심하게 복수를 하고는 돌아섰다.


수업이 끝나고 동료 교수님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내 수업을 듣는 그 학생만의 문제는 아닌 듯했다.

'요즘 아이들~'로 시작하면 꼰대라지만

꼰대 이전에

기본적인 '예의'라는 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예의는 대학생에게 어떻게 알려줘야 하지?"

라는 고민과 함께

내 아들은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야겠다 생각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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