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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다림 Sep 18. 2023

피할 수 없는 일

지독히도 어려운 '발표'

아들 학교에서 학부모공개수업을 했다.

강의시간이라 나도 남편도 참석할 수 없었다.

대신 아들이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참석해 주셨다.


"엄마아빠가 다 시간이 안 돼서 못 갈 것 같아. 미안해."

"괜찮아~ 안 와도 괜찮아."

"대신 할머니가 가셔도 될까?"

"할머니 오시면 나는 완전 좋지!"


공개수업 전 월요일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공개수업 때 역할극 한대.

오늘 연습했는데 처음에는 울 뻔했는데 두 교시 지나고 다시 연습할 때는 성공했어."


아들은 1학년 때 등교 자체를 힘들어했고

겨우 적응한 2학년 때는 발표 공포증이 생겼다.

잘하고 싶은데 입이 안 떨어지고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아들에게 해보라고 윽박지르기만 할 수는 없었다.

발표가 힘들다는 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엄마 아빠도 지금도 여전히 발표 전에는 긴장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발표할 때 부끄럼 없는 듯이 잘하는 ○○ 보면 너무 부러워.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안돼."


발표를 좋아하고 잘하는 친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가 더 많을 거라고,

살면서 발표를 피할 수만은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 연습하면 좋다고,

1, 2학년 때는 학교도 못 가고 앞에 나가서는 한 마디도 못 했는데

지금은 작은 목소리지만 말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잘 이겨낸 거라고...

아이의 노력을 칭찬하며 아이에게 힘을 주려고 했다.


그리고 공개수업 전 화요일

하교 후 전화한 아들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엄마! 나 오늘 성공했어. 내일 잘할 것 같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

퇴근 후 만난 아들은 내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내일 학교 안 가면 안 돼?

왜 공개수업에서 발표를 시키는 거야?

내일이 목요일이면 좋겠어."


그러면서도 대사 연습을 하겠다고 여러 번 읽어보고,

공개수업 당일 수요일 아침에는 또 연습을 할 거라며 6시에 깨워달라고 하는 아들.


피하는 건 정답이 아니니까 작더라도 소리 내는 것만 해보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긴장하는 아들에게

"너의 머리와 마음에 엄마가 응원과 사랑을 넣어두었으니 긴장될 때 꺼내봐."라는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리며 등교시켰다.




아들은 작은 목소리지만 역할극을 성공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칭찬까지 해주셔서 기분이 엄청 좋아 보였다.


"엄마! 뿌듯해."

"그치? 뿌듯하고 후련하지?!"


대단한 발표는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이겨내고 작은 목표를 성취하는 것.

그 성취의 기쁨과 뿌듯함을 알아가는 것.

아들에게 이러한 경험들이 양분이 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삶을 살아갈 때 자신을 믿고 해낼 수 있는 힘이 되길!

부모로서 나의 역할은

아이가 힘들어할 때 함께 힘들어하고 그 상황을 피할 수 있게 하는 게 아니라

덤덤하게 공감해 주되

도망가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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