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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짱이 Nov 19. 2017

앞을 못 본다는 것에 대하여

<빛나는>

만약 앞을 볼 수 없게 된다면 무슨 느낌이 들까? 당장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된다면? 즐겨 보던 풍경, 그림, 영화를 볼 수 없게 된다면?

나는 '장애'라는 것이 신체의 또 다른 모습이자 세계와의 새로운 형태의 관계 맺음이라고 생각하지만, 비장애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시력을 잃었을 때의 내 모습을 상상하기는 힘들 것 같다.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을 테고, 모르고 있었던 각종 불편함에 힘겨워할지도 모른다.


가와세 나오미의 <빛나는>은 시각장애인에 관한 영화다. 우리가 얼마나 비장애인 중심적인 삶을 살았는지, 시력을 잃는다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점점 시력을 잃게 되는 어느 사진작가의 인생에 함께 하게 된다.



영화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영화의 음성해설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음성 해설자는 시각 장애인에게 영화의 감각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시각장애인의 의견을 받는 자리에서 음성 해설자는 어느 사진작가의 쓴 비판을 듣게 된다. 그것이 말싸움으로 번지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서로에게 가까워지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음성해설은 완성에 다가가게 된다.


영화는 주로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한다. 배경보다는 인물의 얼굴, 눈동자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입이 어떻게 씰룩거리는지에 더 집중한다. 혹은 길을 걷는 인물의 몸짓에 집중한다. 그럼으로써 배경은 겨우 '어느 곳인지'에 대한 단서만 제공해주게 되지만, 관객은 인물의 몸짓을 통해 배경을 스스로 그려나가게 된다. 즉 실제로 배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지만, 주변의 소음과 인물의 몸짓을 통해 확장된 비시각적인 배경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풍경을 아예 보여주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연광을 활용한 빛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포스터에 나오는 장면은 석양이 지는 산을 배경으로 한다. 사실 영화의 핵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사진작가에게는 그가 포착했던 여러 빛들 중 하나였고, 영화 해설자에게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간직된 공간이다. 빛을 잃는 것을 다루는 이 영화는 빛나는 공간을 중심으로 인물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나간다.



영화는 영화 해설자가 영화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성장담이기도 하다. 영화와 '영화 속 영화'의 관계, 노을 진 산을 중심으로 맺어지는 인물들의 연결고리를 음미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온전한 음미가 힘들 수도 있겠다. 영화의 얼개를 위해 캐릭터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특히 주인공의 로맨스는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로맨스를 넣기 위해서 그들이 서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만한 계기를 넣어줘야 하지만, 그 계기가 많은 관객을 납득시키기는 힘들 것 같다. 남성 사진작가는 '빛을 포착하는 주체'라는 틀에 갇히게 되고, 여성 음성 해설자는 '포착되기 위한 피사체', '보조자'라는 틀에 갇히게 된다.


장애인에 대한 섬세한 고민과 시선이 엿보이는 영화지만, 오직 시각 장애에만 집중한 나머지, 어떤 캐릭터가 소모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친 영화이다.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감각적이고 감상적인 연출과 삶에 대한 고찰은 마지막에 여운을 남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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