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
애인과 헤어지고 보면 몰입도가 상승하는 영화들이 있다.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이 바로 그러한 영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가슴 저린 몰입감을 선사함과 동시에 어떤 용기까지 불러일으키는 마성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훌륭한 삼박자를 이루고 있다. 미셸 공드리의 개성 있는 연출과 이미지, 찰리 카프만의 독창적이고 완성도 있는 이야기, 그리고 존 브라이언의 서정적이고 섬세한 음악들이다.
존 브라이언은 이미 <매그놀리아>, <펀치 드렁크 러브> 등의 영화에서 인상적인 음악을 작곡했던 미국의 뛰어난 음악가였다. 특히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작곡한 음악은 그래미에서 최고의 사운드트랙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멜로디가 섬세하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의 순간순간을 포착하려는 것만 같다.
아래에 있는 음악은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의 'Punch Drunk Melody'이다. 여러 노래들 중에서도 이 음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들릴 것 같아서 선정했다.
<이터널 선샤인>의 서사나 이미지도 훌륭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완성한 것은 존 브라이언의 음악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멜랑꼴리한 분위기는 영화의 주인공인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추억을 더욱 아련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꼽으라면 'phone call'을 꼽겠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서로 마음이 맞아서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지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나오는데, 분명 설레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왠지 우울한 정서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선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장면을 보면서 '이별을 다루는 영화니깐,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이 더 슬퍼 보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Beck이라는 가수가 부른 'Everybody Gotta Learn Sometimes'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원래 이 음악은 코르기스라는 영국 밴드가 80년대에 만든 음악이다. 감독인 미셸 공드리가 존 브라이언에게 이 음악을 삽입하자고 제안해서, 편곡 버전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절제된 가사가 영화의 여운을 더 진하게 만들어준다.
너의 마음을 바꾸고, 주변을 둘러봐
너의 마음을 바꿔봐. 놀라게 될 거야
너의 사랑이 필요해. 마치 햇살과도 같은
그리고 모두가 언젠가 배워야 하겠지
모두가 언젠가 배워야 하겠지
모두가 언젠가 배워야 하겠지
마지막으로 영화의 정체성을 가장 잘 담아낸 이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가사가 있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면 존 브라이언이 직접 부른 것 같기도 하다.
영화의 이야기는 이별 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기억을 지우는 이야기이다. 이 노래는 기억을 지우는 순간의 느낌을 가사로 잘 담아내었다. 멜로디는 격정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한없이 우울하지도 않다. 그저 담담하게, 마치 해야만 하는 과정을 수행하는 것만 같다.
이마에 진 주름살부터
신발에 묻은 진흙까지
모든 것은 기억이야
너에게 실처럼 이어져 있는
꿈속에서 난 종종 뛰어
네가 없는 그곳으로 말이야
너에게 실처럼 묶여버린
모든 기억을 안고서
이미 이 곳은 많이 변해버렸고
난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지만
신이 버린 모든 장소는 언제나
모퉁이를 돌면 나타나죠
이제 기억 혹은 나뿐이기에
모든 실마리와
당신에게 실처럼 묶인
기억들을 모두 묻어버리겠어요
당신에게 실처럼 묶인
기억들을 모두 묻어버리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