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분석하며 얻을 수 있는 가치
우리가 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동주에 대해서 소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책들을 접하며 공부하였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확실한 자료와 주관적인 성격을 가진 문학을 분석하는 데 의미가 있을까'라는 것이다.
이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 문학을 어려워하는 사람과 문학을 잘못 공부하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전에 애초에 문학이란 무엇일까.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따위가 있다'로 정의되어 있다. 국어사전에는 비교적 쉽게 설명이 되어있지만 이 정도의 설명 가지고는 문학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자신이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봤을 때 드는 생각을 글로 적는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문학에 대한 오해는 흔히 두 가지 부류에서 나타난다. 문학을 어려워하거나 잘못 공부하고 있는 예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문학을 어려워하는 사람을 보자면 삶의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궁극적인 이유는 물론 재밌어서 읽는 것도 있겠지만 삶의 지혜를 깨닫기 위해 읽는 경우도 많다. 또한 어떤 대단한 사람을 멘토로 삼을 수도 있고 자기 계발을 위해 읽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험이 많은 사람은 문학이 어렵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문학도 자기 계발 같은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내가 문학이 자기 계발을 위한 부류에 속한다고 한 이유를 말해보고자 한다.
책은 저자와의 대화라는 말을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책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고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책을 써서 출판이 되었다는 것은 출판사에서 "이 글은 출판했을 때 인기가 있겠군"이라고 생각하며 출판한다. 물론 출판사에서는 재밌다고 출판했지만 인기가 없는 경우도 없진 않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생각했을 때 책이 출판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공신력이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출판된 소설이나 시를 접하면 굉장히 여러 에피소드들이 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혹은 경험한 일들 모두 담겨있을 것이다. 내가 경험한 일이라도 내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네'라고 공감을 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삶의 경험이 부족하다면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을 잘못 공부하고 있는 예시도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어떤 시를 배운다고 했을 때 이 부분은 직유법이 쓰였고 이건 활유법이 쓰였고, 이런 식으로 공부한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공부 방식에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문학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의 암기 과목으로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나 같은 경우 문학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심정을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개인적으로 시험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어떤 문법이 쓰였는지 외워야 하겠지만 최소 시험을 위한 문학이 아니라 진심으로 문학을 접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시인이나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렇게 썼는지를 공감하면서 읽어주면 좋겠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불확실한 자료와 주관적인 성격을 가진 문학을 분석하는 데 의미가 있을까'
역사학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과거 유물이나 증거 등이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한 사람의 일생을 조사한다고 했을 때 그 사람과 직접 대화한다면 쉽게 조사할 수 있고 오류가 있더라도 적은 오류를 포함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라면 단순히 조사하고 싶은 사람의 말을 옮겨 적는데에서 끝나게 된다. 결론적으로 더 이상의 연구가 진행될 수 없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최근 나는 많은 시인 중에서 윤동주를 선택하여 윤동주의 삶과 문학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윤동주의 사촌인 송몽규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하여 자신의 문학 작품을 알렸지만 윤동주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몇 명에게만 시집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역사학이 의미 있는 이유는 증거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 서술했다. 문학 또한 역사학과 마찬가지로 의미가 불확실하다. 윤동주를 당장이라도 살려내서 이 부분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학은 설령 작가에게 물어본다 하더라도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문학과 역사학은 비슷한 점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문학만의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역사학은 객관적인 사실을 추구한다.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사실의 재구성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객관적일 수 없다. 즉, 주관성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문학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설령 작가가 살아있다 해도 의미는 계속 변화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문학은 자신이 느끼는 대로 의미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의미가 계속 변화하는데 우리는 왜 문학을 분석해야 하는 것일까?
의미가 계속 변하는 특징 때문에 분석이 아무 의미 없지 않은가?
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공감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어떤 한 구절을 보고 작가는 왜 여기서 이런 표현을 썼는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문학을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작가의 시대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시는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담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윤동주의 시를 살펴보면 저항적인 느낌의 시들이 많다. 계속해서 성찰하고 고민하고 힘든 상황을 버티고 이겨내기 위해 확고한 의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학을 분석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문학은 당시의 시대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뿐만 아니라 다른 저항 시인들의 시도 일제강점기를 이겨내려는 확고한 의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문학 작품 덕분에 당시 상황의 생각과 사상과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잔혹성과 고통을 문학으로 풀어내며 우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문학의 분석은 더 이상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심정을 공감하고 시대적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앞으로 문학을 접할 일이 있다면 어떤 문학적 용어가 쓰였는지가 아니라 작가의 신념을 공감하며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