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했다.
며칠 전 아이가 아파 소아과에서 소변 검사를 하게 됐다. 소변 컵을 건네주시며 임상병리사 선생님이 물으셨다.
"소변 가릴 줄 알죠?"
"... 네, 아 근데 지금은 기저귀를 차고 나왔어요."
"그럼 집에서는 가리죠?"
"....... 네!"
그날 밤 남편에게 고백하듯 말했다. 소변을 가릴 수 있다고 거짓말한 게 나 스스로도 아이한테도 너무 부끄럽다고, 이제 정말 때가 된 것 같다고. 이전부터 내가 배변훈련으로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남편은, 막상 시작하면 금방 뗄 수 있을 거라며 나를 달랬다.
기저귀를 뗄 '때'는 아이마다 천차만별인데, 우선 아이가 변의를 느낄 때 부모에게 알려줄 수 있어야 시작할 수가 있다. 아이가 옹알이를 많이 했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다들 말을 빨리 할 거라고 했다. 은연중에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24개월부터 배변훈련을 시도하려던 참이었는데, 좀처럼 의사표현이 늘지 않았고 나는 기저귀를 빨리 떼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졌다. 아이들은 굉장히 눈치가 빨라서, 더구나 엄마의 감정은 그대로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어느 순간 마음을 내려놓고 기다리기로 했다. 근데 너무 내려놨던 거다.
시도를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시도할 때마다 아이도 나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이틀 만에 끝나곤 했다. 이유식 때 이후로 가장 큰 난관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때 되면 한다는 말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 시기가 온 것이다. 아이는 이미 의사표현은 물론 '이것도 안다고?' 싶은 말을 툭툭 잘도 하기 시작했다. 때는 이미 다가와 있다는 걸 알았지만,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 선생님께 조언을 구해가며 자연스럽게 떼려던 참이었다. 생각보다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거짓말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그리 깔끔한 사람이 아니다. 바로바로 치우기보다 어지럽혔다가 한꺼번에 치우는 쪽에 가까웠는데, 결혼 후 가사를 맡게 되면서 집이라는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다. 기저귀 떼기를 왜 이렇게 미루게 된 걸까 생각하다 찾은 첫 번째 이유였다. 배변훈련 기간 동안에는 아이가 이곳저곳에 소변을 보더라도 놀라지 말아야 했다. 그렇게 며칠이 됐건 변기에 소변을 볼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나무란 적은 없었지만 놀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두 번째는 이 과정에서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생겨 평생 결벽증에 시달릴 수 있다는 걸 알고 난 뒤, 시도하기 조차 두려워졌다. 배변훈련 중에 내가 한 반응으로 인해 아이가 예민한 성향으로 변할 수도 있다니.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는 변해야만 한다.
부모가 된다는 건, 끊임없이 나 자신과 타협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니까. 원래 못하던 거니까. 이런 되지도 않는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이걸 처음 느꼈던 때가 처음으로 이유식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이유식에 내 영혼을 갈아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마, 칼, 식기 하나하나 소독해가며 기름기가 적은 부위의 소고기로 낸 육수와 입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간 야채, 소고기를 실리콘 틀에 소분해두어야 했다. 나는 원래 이런 거 진짜 못하는데... 그래도 해야만 했다. 지금도 그 실리콘 틀을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6개월부터 이유식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있던 상태라 더 힘들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배변훈련을 하며 그때가 떠오른 건, 아이를 키우며 내가 원래 싫어하거나 잘 못하는 일도 잘 해내야만 하는 상황이 또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올 게 분명하다.
33개월, 기저귀를 떼다
거짓말 사건이 있은 다음 날부터 배변훈련에 돌입했다. 남편도 전 날 내가 했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더 성의껏 협조해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전까지 잘 입던 팬티를 갑자기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제 의사표현이 너무 강하다 보니 어쩌면 더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단 기저귀를 입혀두고 있다가, 갈아야 할 때쯤 집에 있는 팬티를 다 가지고 와서는 골라보라고 했다. 다행히도 팬티를 고르는 게 재밌었는지, 노란색 버스 모양이 있는 팬티를 고르더니 순순히 입어주는 것이었다.
아이는 평소에 물과 우유를 많이 마셔서 소변 양이 많기 때문에, 타이밍을 잡기가 늘 힘들었다. 남편과 나는 생각이 날 때마다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이야기해"라고 아이에게 말했고 조금이라도 변기에 앉고 싶어 하는 눈치가 느껴지면 재빨리 변기에 앉혔다. 세 번째 팬티가 적셔졌고 우리는 빠르면 3일에서 길면 일주일도 넘게 걸릴 수 있을 거라 이야기하며, 계속해서 아이가 물을 마시기만 하면 주의 깊게 살펴보다가 수시로 변기에 앉을 수 있도록 도왔다. 아이가 늘 대변을 보는 스팟이 있는데 문득 그쪽으로 변기를 옮겨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변기를 옮겨보았다.
그렇게 아무 기대 없이,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길래 옮겨둔 변기에 앉혔더니 머지않아 '쪼르르...' 소리가 들렸다. 소변을 보는 것이었다. 실수로 나온 게 아니라 참았다가 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대변도 볼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시작한 지 하루 만에 대변까지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남편도 나도 진심으로 기뻐하며 아이에게 칭찬을 퍼부었다. 이제 정말 애증의 기저귀와 빠이빠이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여전히 밤 기저귀는 떼지 못했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곧, 쉽게 뗄 수 있을 것이다.
왜 그 순간 거짓말을 했던 걸까 생각해보았다. 아마 선생님은 우리 아이 또래들이 거의 다 소변을 가릴 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물어보셨을 터. 나 또한 24개월부터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던 기저귀 떼기가 계속 마음 한 켠에서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는데, 미루고 미루던 차에 때를 제대로 맞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타이밍은 잘 맞아떨어져 아이도 부모도 힘들지 않은 기저귀 떼기를 할 수 있었다.
거짓말이 계기가 될 줄이야. 그때 왜 내가 거짓말을 했던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