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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하비 Apr 20. 2020

네 탓, 내 탓


아이가 기저귀를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변기에 앉는 모습이 꽤나 익숙하지만, 어제는 너무 급했던지 팬티에 대변을 보았고 오늘은 좋아하는 영상을  놓고 바라보다 팬티를 입은  소변을 봤다.


나는 비위가  좋은 편이라 대변이나 소변이 묻은 팬티를 그리 어렵지 않게 손빨래할  있었다. 그런데  며칠 동안 매일 오줌과 똥이 묻은 팬티를 손빨래하다 보니 괜히 짜증이 났다. 아이 똥은 더럽지 않다던데. 더럽다...


아이의 팬티를 빨다가 생각했다.

'내가  신경  써준걸, 누구 탓을 하는 거야...?'


 이런 식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3 동안 예상치 못했던 아이의 행동으로 어쩔  몰랐던 ,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미리 대처할  없었던 일이나 유난히 모든 일이  힘들게만 느껴졌던 . 먼저 아이 탓을 다가 곧바로  탓으로 돌렸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졌다.


살면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누가 잘못했는지 명확하게   있는 경우보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지 모호할 때가  많다. 알고 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닐 때도 있고. 내가 잘못했다는  아는데도 불구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누구든 탓하고 싶어 지기도 한다.


사회에서는  탓을 하는  힘들었다. 나는 잘하고 있다고 어떻게든 나를 감싸주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  어딘가에는 있을  자리를 찾아 열심히 살아보자고 했던 다짐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아서. 누군가의 탓을 한다는  나에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었던 것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이랬던 나에게 나보다 먼저 보호해야  대상이 생긴 것이다.


처음 해보는 엄마라는 일에 좌충우돌, 크고 작은 일들이 매일 벌어졌다. 특히나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는 일이 생길 때면 늘 내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누구라도 탓하고 싶어 졌지만 결국 내 탓이었고 내가 더 잘해야겠다 다짐했다.


 탓이오,  탓이지. 내가  잘해야지. 다른   되더라도 너에게만은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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